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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어름 Feb 25. 2023

전화상담원 분들께 전하는 글

전화상담의 아이러니

 저는 어떤 문젯거리든 생기기만 하면 곧잘 전화상담을 애용하는 편입니다. 아직도 FAQ는 너무도 부실하고, 챗봇도 그와 별반 다를 게 없으니 믿을 구석은 '사람' 뿐이지요. 친구들과 여행하다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친구가 있다고요? 그게 바로 접니다.


 

 얼마 전에 저는 자주 애용하던 어플에서 문제가 생겨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보통은 상담원에게 돌아가는 문의를 최대한 줄이고 싶은 모양인지 상담원 연결은 ARS 마지막이나 어디 구석진 곳에 꽁꽁 숨겨놓는 것 같습니다. 겨우겨우 '상담원 연결' 항목을 찾아 버튼을 누르니 어떤 여성 상담원 분께서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십니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해결할 방법이 없느냐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이상하게 그날따라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고객님."


 뭔가 많이 이상했다죠, 그날따라. 왜 상담원 분께서 죄송하다고 하는지. 굳이 죄송할 입장을 따지고 들자면 기술팀 직원분들이 죄송할 일이었습니다. 저는 꽤나 반사적으로 대답했습니다.


 " 아니에요, 그쪽이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때 이후로도 상담원 분께서 제시해 주신 방법들이 전부 통하지 않자 그는 거듭 "죄송합니다"를 외치시는데 목소리에서 진심으로 당황하신 모습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일관되게 대응했습니다. 미안해할 필요도 당황하실 필요도 전혀 없다고요. 그저 상담원 분께서는 매뉴얼대로, 기술팀에서 알려준 대로 절차를 진행하며 자신이 맡은 바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고 이번에도 잘못을 굳이 따진다면 기술팀에서 죄송할 일이었습니다. 아 물론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안 보이고 시간은 지체되니 짜증은 나더군요. 그렇다고 이런 감정은 상담원 분께 푼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니 그저 속으로 삭이거나 마치 친구에게 말하듯 푸념하거나 할 뿐이었죠. " 아우 정말 답답하네요. 여기에 시간 진짜 많이 투자했거든요. 근데 진전이 하나도 없네요." 그때 "에고, 그러셨구나" 하는 위로 섞인 공감 한 마디면 배 내민 강아지처럼 마음은 이내 풀렸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기술팀에 해당 사항을 전달하고 조치 후 연락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상담을 종료하였습니다. 전화를 끊은 제 머릿속은 조금 복잡했습니다.


 ' 왜 자기 잘못도 아닌데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지?'

 ' 왜 짜증은 나는데 해당 부서와 직접 이야기가 안 되고 중간자인 전화상담원에게만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예전에 진용진 유튜버의 '없는 영화' 시리즈 중 전화상담원 편을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정말 상상치도 못한 욕과 음담패설, 서비스 직종을 경험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정말 충격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 언어폭력이 실제로도 그렇게 난무하는 거라면, 내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고객의 짜증을 받아주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할 법합니다. 그런 스파르타식 실전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회사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다 각자의 자리에서 '합리적인' 것이 대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회사 입장에서야 '죄송할' 일이지만, 상담원 입장에서 죄송할 일은 아니니 상담대응 매뉴얼을 그저 "불편하셨겠어요" 하는 공감의 한 마디로 바꾸면 훨씬 더 자연스럽고 편하지 싶습니다. 고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답답한 심정은 이해하나 상담원은 절대 '에라 모르겠다 배 째라'는 식으로 대충 상담해주진 않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이미 최선을 다 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이 안 되는 것이라면 이미 상담원의 손을 벗어난 것이니 담당 부서에 더 문의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거기서 상담원 분께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봐야 상담원 분에겐 그저 또 다른 감정 노동일뿐이며 서로 기분만 나빠지는 의미 없는 푸념밖에 되질 않습니다.


 아무리 이런 말을 전해 보아야 진상 짓을 할 사람은 그저 매일 그랬듯 오늘도 똑같은 진상 짓을 반복하겠죠. 그래서 고객을 응대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도 대단한 일인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라도 상담원 분의 힘을 돋궈주는 한 마디를 건넨다면 세상이 좀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좀 더 이성적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상담원 분을 대할 때 상담이 끝나고 저나 상담원 분이나 서로 기분이 좋아지는 윈윈의 짤막한 추억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전화상담이 끝나면 항상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만약 전화상담원으로 일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꼭 이 진심이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늦은 시간인데 고생 정말 많으십니다. 힘내시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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