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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어름 Mar 05. 2023

살까, 말까?

소비의 현명함

 

귀염둥이 아냐 포저, 애니메이션 <스파이 패밀리>



 애니메이션 <스파이 패밀리>의 주인공 '아냐'.

 갑자기 느닷없이 벌어진 가족 퀴즈쇼.

 사회자가 아빠인 로이드에게 묻는다.

 " 지금 아냐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음, 가장 갖고 싶은 것..?

 그래, 아냐가 얼마 전에 갖고 싶다고 한 게 있었지!


 로이드는 고민 끝에 대답한다.

  " 본드맨의 스파이 굿즈!"


 이에 아냐의 대답..

 " 아냐는 지금.. 음.. 목이 말라서 물을 먹고 싶어!"






 정말, 이런 현명한 대답이 더 있을까? 그래,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지. 만약 아냐에게 돈이 생기면 그가 가장 먼저 살 것은 장난감 세트가 아닌 물병일 것이다. 나는 살면서 가끔 내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잊고 사는 것 같다. 남들이 근사한 와인 바에서 와인을 마시면 나도 와인을 좋아하게 되는 것만 같다. 친구가 고급스러운 차를 타고 나타나면 그 멋들어진 외관을 보고는 나도 비슷한 차를 사야만 할 것 같다. 와인! 자동차! 머릿속에서 누가 끊임없이 외쳐대는 탓에, 내가 목이 말랐다는 사실을 잊는다. 가장 사야 할 것은 와인도 자동차도 아닌 물이라는 것 말이다.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 돈은 그만큼 훌륭한 만능 교환수단이다. 우리가 갖고 싶거나 얻고 싶은 것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 "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진짜 많은 부분 맞는 말이다. 우리가 돈을 좇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걸 갖고 싶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그 어느 것도 돈으로 교환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능열쇠인 돈은 그래서 우리에게 신처럼 추앙받는다.


 그런데 나는 돈을 그렇게나 좇으면서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는 모른다. 와인을 원하는 건지, 자동차를 원하는 건지, 물을 원하는 건지. 돈이 생기면 뭐 하나? 내가 뭘 좋아하는 줄 모르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아마 가끔 가다 들리는 건물주의 정신과 상담 사례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나의 자동차에 대한 욕구는, 그 차를 보기 전까지는 있지도 않았던 욕구였다. 심지어 최근 200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인류 전체 2백만 년의 역사상 단 한 번도 인간은 자동차를 원한 적이 없다. 그러니 내 유전자 속에 '고급 승용차 욕망하기 유전자'가 들어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저 남들이 하는 게 좋아 보여서 따라 하는 게 아닌가? 이동수단에 불과한 자동차에 그토록 돈을 쏟아부을 필요가 뭐가 있는가?


 정답은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계속 은연중에 와인을 선망하고, 고급 승용차를 욕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와인을 카운터에 올려놓고 나서라도 정신을 차리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와인을 먹고 싶어 하는 게 맞나? 내 안에 '와인 좋아하기 유전자'가 있나? 그냥 남이 먹는 게 좋아 보여서 먹으려는 것은 아닐까? 남들 따라 하는 거야, 사지 마! 아니야, 네가 원하던 거야, 빨리 사! 과연, 머릿속 미카엘이 이길 것인가, 루시퍼가 이길 것인가. 결과는 60초 뒤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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