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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어름 Mar 28. 2023

어쨌든 나는 커피를 마셨다

딜레마



 커피숍. 들어간다. 카운터. 반짝이는 눈빛. 초롱초롱. 무얼 시키시겠어요? 아, 그러게요. 제일 잘 나가는 게 뭔가요? 딸기 초콜릿 스무디. 말차라떼. 딸기 생크림 케잌. 음,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뭔가 하나씩 모자라단 말이지. 저기요! 빨리 주문하세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자리에 돌아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쥔 채.


 결국 내 손에 쥔 것은 내가 가장 이끌린 것일 뿐이다. 차갑고 쓰디쓴 그 맛에 도취된 과거의 경험이 나를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이끌었달까.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참 쉽다. 고민할 필요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설사 내가 딸기 초콜릿 스무디를 시켜서 맛이 없었다고 한들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다음에는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먹으면 그만이다. 게다가 그 카페의 시그니처 메뉴를 먹어봤다는 자긍심(?)을 갖고 친구에게 나름의 잘난 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도 덤이다.




 그런데 이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사안은 조금씩 크리티컬 해진다. 이 코트를 살지 저 자켓을 살지부터, 여자친구에게 로즈골드 목걸이를 선물할지 아이보리 반지를 선물할지, 이직을 할지 일단은 그냥 다니던 곳을 다닐지, 이쪽 재개발에 투자할지 저쪽 빌라에 투자할지. 와, 미쳐 돌아버리겠네. 어떡하지? 어느 쪽을 택해야 선택을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사안이 심각해지면 심각해질수록 우리는 그 사안에 대해 더더욱 심도 있게 고민한다. 재개발에 투자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그 장소에 가서 직접 몇 번이고 둘러보며 공인중개사의 조언을 신중하게 경청할 것이다. 관련된 책들도 닥치는 대로 집어 읽으며 실제로 도움이 될지는 모를 관련된 유튜브 영상을 집히는 대로 탐독할 것이다. 때론 그저 답 없이 침대에 누워 마음속 울타리를 이리저리 넘나드는 어린양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에 맺힌 흙덩이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고민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그 고민은 그 흙덩이를 덜어주기는커녕 표면을 한 겹 두 겹 감싼다.


 하지만 언제고 마음에 그 짐을 쥔 채로 살아갈 순 없다. 어떤 고민이든 딜레마든 결국엔 결정의 순간이 필요하다. 큰 마음을 먹고 재개발에 투자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정을 하는 순간 마법같이 무언가가 터진다. 갑자기 재개발 지역 규제가 생긴다거나 반대로 내가 버렸던 다른 선택지에서 호재가 터지고야 만다. ' 하, 그냥 저거 선택할걸.' 내 건 보잘것없어 보이고 남의 떡만 이상하게 더 커 보인다. 선택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 내가 저걸 선택했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고민하며 말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였던가? 결국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여러 가지 선택지에 직면하고 그때마다 안타깝게도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아메리카노와 스무디 중에서, 코트와 자켓 중에서, 목걸이와 반지 중에서, 이직과 근속 중에서, 재개발과 빌라 중에서. 게다가 그런 선택지들은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둘 다 너무나 좋아 보인다. 다 나름의 강력한 장점이 있고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그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골라야 하는지는 매번 너무나 힘들다. 이렇게 비록 선택이란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도 불가피하게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을 선택했는지에 집중하는 것보다 선택한 이후의 내 태도에 집중하는 게 더 간단하고 현명하지 않을까?






 중세 철학자 스피노자에게 후회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그가 본 인간들은 의지란 존재하지 않기에 매 순간 '욕망'이라는 것만을 따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야식의 유혹을 뿌리치는 사람은 의지가 식욕을 이긴 것이 아니라,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야식을 먹고자 하는 '욕망'을 이겼을 뿐이다. 충동구매를 줄이고 저축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유혹에 못 이겨 아이패드를 질러버렸다면, 그 사람의 의지가 구매 욕구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저축을 하려는 '욕망'보다 아이패드를 사려는 '욕망'이 더 컸을 뿐이다. 그러니 야식을 먹거나 아이패드를 샀다고 미친 듯이 후회하며 과거로 돌아가본들 결과가 달라질 일은 없다. 왜냐하면 결국 그때의 욕망대로 저번과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개발을 투자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는 참 심각한 얼굴로 많은 정보를 긁어모은다. 괜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돌리고 평상시 믿지도 않던 사주를 보러 간다. 그때는 그때 나름의 최선을 다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갖가지 정보를 통해 확장된 지평을 바탕으로 우리 '욕망'의 화살표는 방향을 정한다. 그런데 꼭 선택을 하고 나서야 내가 버린 선택지에 대해 미련이 남는 이유는 선택 이후에 더 쌓아올린 경험으로 인해 그만큼 미련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지평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그때의 내가 멍청해서 미련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고, 실수로 어떤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그저 그때는 그때의 지평으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요컨대, 우리는 그토록 후회하고 개탄하던 선택의 순간에 그때의 지평에 따라 그때 우리가 가진 욕망에 이끌려 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니 만약 과거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자신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 믿는 이가 있다면 이는 크나큰 오만이다. 그때의 어린아이는 지금 당신과 같은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미래의 어른이 후회할지 말지도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야속하게도 내가 후회하든 후회하지 않든 그저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할 뿐이다.




 만국공통의 브레인, 위키백과에 따르면 딜레마의 정의는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이다. 그러니까 선택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여러 선택지들 모두 그 결과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여긴다'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실제로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뿐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선택한 이상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선택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 선택을 정답으로 만드는 것, 바람직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가치를 스스로 창조할 힘이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고유한 힘이다. 이제부터 당신의 선택은 항상 바람직하다. 항상 최선의 산물이며 최고의 선택이다. 아닌 것 같다고? 그래, 당신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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