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는 사주를 자주 보시는 편이다. 그는 보시는 족족 내게 그 결과를 전해주시는데, 반복적으로 들어서 귀에 박힌 얘기가 바로 '역마살이 끼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사실 역마살이 끼었는지는 굳이 사주를 봐서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일단 직업부터가 항해사다. 나는 대체로 1년에 8개월 정도 배에 승선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역마살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법한 비행기 조종사나 승무원과 비교했을 때 집에서 나와있는 시간으로 치면 아마 자웅을 겨룰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내항선이 아닌 외항상선을 타므로 외국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나의 주된 일이다. 내항선을 타고 있었다면 활동 범위가 우리나라를 벗어나지 않았겠지만, 외항상선은 동남아시아, 중동, 유럽, 북미, 남미 등 그 범위를 가리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나는 외항상선 중에서도 특정 국가들만 오가는 항로가 아니라, 매우 다양한 국가들을 방문하는 항로를 취항한다. 어떤 외항상선의 경우 한국과 호주만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항로를 뛰기도 하는데 내가 승선하는 컨테이너선의 경우 회사의 거래 범위에 따라 남극과 북극만 제외하면 어떤 국가든 크게 가리지 않는다.
이런 배경 덕분에 배를 타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외국에서 찍은 사진들이 아주 많다. 로스 앤젤레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찍은 사진, 브뤼셀의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싱가포르의 사자상 앞에서 찍은 사진,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찍은 사진, 런던의 빅벤 앞에서 찍은 사진 등 참 다들 여기저기 다양하게 잘 놀러 다닌다. 이렇게 돈을 받으며 해외를 갈 수 있는 직업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휴가기간 때 간혹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생각보다 이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있곤 했다. 본인은 일하느라 바빠서 해외는커녕 제대로 된 여행을 가지도 못하고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삶이 너무 지루해 죽겠는데, 이와는 반대로 돈은 벌면서 해외까지 나갈 기회가 있으니 여기저기 다니는 게 너무 자유로워 보인다는 것이다. 한 번 갔다 오면 몇 백만 원씩은 그냥 깨지는 먼 타지를 직업으로 이곳저곳 들르면서 현지 음식도 먹어보고 기념품도 사고 이와 동시에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 보이는가!
그런데 사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막상 나의 생활에 대해 조금만 들어봐도 '자유로움'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 승선할 때 약 4~5개월 정도 되는 시간 동안 거의 대부분을 한 장소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 장소는 바로 배에서 '거주구역'이라고 불리는 공간이다.
350~400m 정도 되는 배 안에서 매우 작은 일부를 차지하는 이 거주구역은 마치 주상복합 아파트를 연상케 한다. 지하 1층에는 기관실로 가는 통로, 1층에서 3층까지는 사무실, 식당, 휴게실, 병원, 헬스장 등이 위치해 있고, 4층부터 10층까지는 선원들이 지내는 침실과 각종 창고가 비치되어 있으며, 11층에는 비행기로 치면 조종실과 비슷한 공간인 '선교'가 있다. 이렇듯 거주구역은 층수로 치면 거의 아파트 한 채 크기를 구가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을 수가 없다. 이처럼, 거주구역에는 식당에, 휴게실에, 헬스장에, 개인 방까지 한 곳에 모여있는 데다가 엘리베이터까지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주상복합 아파트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만한 정도다.
하지만 일반 주상복합과 선내 거주구역은 아주 당연하면서도 치명적인 차이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거주구역이 여느 주상복합과 달리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바다로 에워싸인 탓에 선원들은 어딜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 퇴근 후에 간단히 커피를 한 잔 하러 카페를 가고 싶어도,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콘서트를 보러 가고 싶어도, 모임을 참석하기 위해 홍대를 가고 싶어도 우리는 환경 상 갈 수가 없다. 일시적으로 항만에 접안에서 반나절 동안 잠시 상륙을 나갔다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대부분의 날들을 배 안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 대부분의 선원들이 느끼는 감정은 사실 자유로움보다는 답답함에 좀 더 가깝다.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나가 있지만 몸은 어쩔 수 없이 묶여있는 상태. 마음과 몸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선원들의 답답함은 더욱 커져만 간다. 특히, 선내 인터넷이 자유로운 요즘의 환경에서는 더더욱 각종 SNS를 통해 지인들이 누리는 문화생활을 보고 자신과 비교하며 비관적인 생각에 빠져들기 쉽다.
이런 상황을 보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누구보다도 전 세계를 자유롭게 다니는 항해사에게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느낄 법한 기본적인 자유조차 없다니. 항해사는 과연 자유롭게 산다고 봐야 하는가, 자유롭지 않다고 봐야 하는가. 역마살이 있다고 봐야 하는가, 없다고 봐야 하는가.
<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 구글에서 UI 디자이너를 하고 계신 분이 나온 적이 있다. 그는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호기롭게 미국으로 향했으나, 막상 도착한 미국에서는 오히려 일에 치이면서 생활 반경이 한국에서보다 더 좁아진 탓에 역설적으로 답답함이 심해졌다고 했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기 위해 바다로 나온 줄 알았건만, 알고 보니 또 다른 우물 안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분명 이런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자유의 상징인 미국에서, 그것도 사내 복지가 좋기로 유명한 구글에 다니고 있는데 답답하다니, 우물 안 개구리라니! 이보다 더 허무맹랑한 소리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나는 이 방송을 보며 참 공감이 많이 됐다.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은 삶. 두껍게 덧칠된 부러움의 통념 탓에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딱히 공감받지 못하는 삶. 그 디자이너 분이나 우리나 결국 한쪽의 자유로움을 취하기 위해 다른 쪽의 자유로움을 내어준 사람들이 아닐까. 그는 복지와 문화의 자유로움을 위해 생활 반경의 자유로움을 내어줬고, 우리는 거취 이동과 경험의 자유로움을 위해 소소한 일상의 자유로움을 내어줬으니까.
확실히 배를 타면서 겪는 경험들은 흔하지 않고 소중한 경험들임이 확실하다. 도시와 속세에서 벗어나 날것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 나서서 따로 돈을 쓰고 싶지는 않은 해외여행을 의도치 않게 가볼 수 있었던 기회, 평소에 내 돈을 주고는 절대 가지 않았을 법한 나라까지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기회.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항해사였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기회들이고 나에겐 너무나도 뜻깊고 소중한 자산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 자유로움의 이면에 그에 상응하는 부자유 또한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자유로움을 취하기 위해 우리는 방과 후 일상이나 퇴근 후 일탈 같은 소소한 자유로움을 전부 버렸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이 '소소한' 자유로움이 그 위력만큼은 절대 소소하지 않다는 것이다. 선원들이 승선하는 도중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낄 때는 바로 하선날짜가 잡혔을 때이다. 그들이 휴가를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히 고된 업무에 지쳐 휴식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소소한 자유로움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소하게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는 그런 자유로움 말이다. 확실히 그들에게도 해외 여행지를 한 번 경험하는 것보다는 그저 일상을 좀 더 자유롭게 하는 게 백배 천배 낫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섣불리 질투할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질투의 대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르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내가 섣불리 질투하지 마라고 해놓고 이런 말 하는 것이 웃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분이 갖는 그 소소한 자유로움이 참 부럽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주상복합 안에서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는 상황이라 더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소소한 자유를 내어주는 역마살이라면 나한테는 딱히 필요 없는데 당근에나 한 번 올려볼까. 역마살 한 근에 삼만 원 정도. 쿨거래 합니다. 계좌이체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