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 :우리 회사에는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항로를 뛰는 선박들이 있는데 이런 선박을 '불귀항선'이라고 부른다. 이런 배를 타는 순간부터는 휴가 내리기 전까지 한국 근처에 얼씬도 못한다고 봐야 한다. 요즘 한 번 승선할 때의 개월 수가 4개월 정도 되니까 우리한테 불귀항선을 타라고 하는 것은 4개월 간의 엄격한 금지령을 선고받는 것과 같다. 그렇게 회사는 우리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4개월 금지령에 처한다. 꽝- 꽝- 꽝-.
이번 이야기는 이 금지령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골뱅이에 얽힌 작은 일화로 한 번 시작해보겠다.
우리나라 골뱅이의 대부분은 영국에서 들어온다. 골뱅이를 먹다 먹다가 동해의 골뱅이를 싹쓸이해버렸던 우리나라는 매년 약 5000 톤 가량의 골뱅이를 영국에서 수입해 온다. 영국 골뱅이가 수온이 차서 식감도 쫀득쫀득하고 가격도 경제적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영국 입장에서도 전체 어획량의 90%를 전부 우리나라에 수출할 정도로 골뱅이 수출 의존도가 높다.
그런데 막상 영국 사람들은 골뱅이를 전혀 음식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자기 나라의 골뱅이가 그렇게 명물로 대접받는지도 모르고 정작 본인들은 골뱅이 어획량의 2%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로의 수출 루트가 개척되기 전에만 하더라도 골뱅이는 무게만 차지하는 골칫덩어리로 취급당하며 잡히는 족족 바다로 도로 버려지곤 했다.
이 골뱅이 일화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매우 잘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시다. 우리나라는 동해에 있는 골뱅이를 전멸시키고도 없어서 못 먹는 상황이었고, 영국은 그렇게 골뱅이가 넘쳐나도 수요가 없으니 잡는 대로 바다로 버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수요는 있으나 그에 맞는 공급이 부족해졌던 우리나라는 영국에 돈을 주고 골뱅이를 사 올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자연적인 이유 때문에 공급이 부족해졌던 골뱅이와는 달리, 가격을 올리기 위해 공급을 일부러 줄이는 경우도 있다. 일부 '리미티드' 상품들이 대표적인 예시다. 앞으로 그와 똑같은 상품을 다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광고하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비싸게 주고서라도 사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그 상품이 실제로 한정적으로 판매할 수밖에 없을 만큼 제작에 공을 들인 상품이라면 높은 가격을 소비하는 것은 합당하다. 다만, 그런 정도의 고가치 상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희소성만으로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소비자는 그 덕에 가격이 터무니없이 올라갔음에도 그 가격이 꽤나 합리적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물건에 대한 욕구가 그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그 물건이 희귀하기 때문이라면 그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정말 올바른 판단인 걸까? 질문을 얼핏 듣기만 해도 별로 현명한 구매는 아니라는 것이 확 와닿는다. "이런 질문을 하는 거 보니 작가님은 항상 판단을 현명하게 하시는 모양이군요?" 아니, 전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저 나름의 방법으로 노오력 하고 있을 뿐.
희소성이 주는 착시현상을 내가 온몸으로 체감하기 시작했던 것은 승선생활을 시작한 이후였다. 배를 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당연하게 느껴졌던 대부분의 것들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그 흔하디 흔한 저가형 카페를 비롯해 치킨집, 피자집, 중국집, 베트남 음식점, 족발집, 술집, 분식집, 뷔페 등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바다 한가운데로 음식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는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 물론, 배에서 아예 못 먹는 것은 아니다. 조리장님이 매일같이 열심히 노력해 주시는 덕분에 돈까스, 제육볶음, 삼계탕, 김밥, 떡볶이, 치킨 등등 못 먹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조리장님에겐 아주 죄송할 따름이지만 아무리 맛이 좋아도 밖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배달음식을 아예 못 먹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입항했을 때 부두 쪽으로 배달을 시키면 음식 배달이 오기도 하고, 정 안 되면 상륙을 나가서 직접 식당을 가면 되니까 말이다. 다만, 이것도 한국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두 달에서 네 달을 기다려야 하고, 한국에 아예 안 들어오는 배도 꽤나 많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조건에 불과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배에 승선한 순간부터는 극심한 희소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배를 내리면 희소성의 법칙에서 자유로워지냐면 그렇지만도 않다. 왜냐하면 두 달 정도의 휴가가 끝나면 다시 배에 승선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배를 내렸더라도 사실상 다시 승선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므로, 그 두 달간 선원들에게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긴다. 그동안 승선하며 먹고 싶었지만 먹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이번 휴가기간 동안 다 도장 깨기를 하고야 말 것이라는 굳은 다짐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희소성에 단단히 속은 것이다.
위의 사명감이 극에 달하는 시기는 바로 배를 하선하기 직전이다. 왜냐하면 사명감은 음식에 대한 욕구에 비례하여 커지기 때문이다. 하선일을 기준으로 일주일 전부터는 마음속에 불꽃이 점점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여태 식욕의 한이 쌓여 일종의 분노가 된 것인지, 상상하는 기쁨에 빠져 일종의 환희를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하나같이 아주 진지한 마음으로 먹고 싶은 음식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꾹꾹 눌러쓰기 시작한다. 이 때의 우리는 마치 과거 시험에서 한 필 한 필 정답을 진중히 써 내려가는 한 명의 선비와도 같다. 수박, 아이스 아메리카노, BHO 맛초킹, 팟타이, 밀면, 숯불치킨, 곱창전골, 참치회, 타코야끼, 깐풍기 등등. 사명감의 열기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이 버킷리스트는 눈 깜짝할 새에 메모장 한 면을 가득 메운다.
이제 문제는 하선한 이후에 발생한다.
사명감은 하선 직전에 상승한 이후로 그 수준에서 별로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승선기간에 비해 비교적 짧은 휴가기간이 주는 무형의 압박감은 휴가를 세는 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욕구는 좀 다르다. 배에서는 그렇게 없어서 못 먹는다며 징징거렸던 음식들이 이제 육지에서 스마트폰 터치 한 번이면 시킬 수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딱히 끌리지가 않는다. 안 먹는 것이 아니라 못 먹는 것일 때는 미치도록 먹고 싶었지만, 막상 먹을 수 있게 되니 안 먹고 싶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극적으로 감소한 욕구는 항상 높은 사명감과 충돌한다. 실제로 별로 먹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 승선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왠지 지금 먹지 않으면 손해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결국 내 욕구를 무시한 채 가짜 버킷리스트에 적힌 음식을 먹게 되면 왠지 모르게 좋은 것보단 후회만 잔잔하게 남는다.
나를 포함한 주변의 많은 선원들이 실제로 이런 현상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여러 차례 승하선을 거듭하며 이 현상을 지겹도록 겪은 나는 이에 대해 내 나름의 결론을 짓기에 이르렀다. 이것이야말로 배에서의 희소성 때문에 딱히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착시 현상이라고 말이다.
이는 어릴 때 괜히 엄마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와 다를 게 없다.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이었는데 막상 엄마가 사주면 3일도 안 가서 싫증 났던 어릴 적의 내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내가 하선하기 전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던 도중에 어묵탕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저 배에서는 맛있는 어묵탕을 먹기 힘들어서일 뿐이지 막상 배를 내리면 결과적으로 어묵탕이 별로 땡기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종이 한 면을 가득 채운 버킷리스트 중에 단 하나도 실제로 먹은 것이 없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수박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거의 매일같이 사 먹었고, 맛초킹 같은 경우 두 차례 이상 구해 먹었으니 말이다. 이 음식들, 특히나 수박과 아이스 아메리카노야말로 나에게는 '진짜' 버킷리스트였던 셈이었다.
그럼 여기서 진짜 버킷리스트를 가려내는 방법이 있을까? 희소성에 의한 것이 아닌 진짜 내가 원하는 것, 착시가 아닌 진짜 나의 욕망, 하선 전에도 먹고 싶어 했고 실제로 수없이 먹었던 수박, 아이스 아메리카노 또는 팟타이 같은 존재를 알아차리는 방법 말이다. 나는 승선을 하며 진짜 버킷리스트를 구별하는 방법을 내 나름대로 터득했고, 이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내가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나는 수박을 진심으로 먹고 싶어 했고 이 욕구는 승선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배에 부식을 올릴 때 개인품*으로 수박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나는 부식을 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박을 최소 한 통씩은 꼭 시킨다. 이를 통해 나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싱가포르, 두바이 등 각지의 수박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배에서는 부식 업체에 개인별로 따로 돈을 지불하여 개인품이라는 명목으로 음식이나 기성품을 싣는 경우가 많다.
개인품으로 수박을 시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진귀한 광경인 듯했다. 여태 무려 30년을 승선해 오셨던 선장님 몇 분께서는 당신 승선 인생 30년 동안 개인품으로 수박을 시키는 사람은 살다 살다 처음 본다고 했으니, 내가 수박을 구함에 있어 꽤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 아닐까?
두 번째 방법은 내 매일매일을 채울 정도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는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내가 배를 타면서조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어 했던 것은, 육지에 있는 동안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 먹을 정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내 일상에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승선을 하기 전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저 먹고 싶으면 카페가 여기저기 널려 있으니 구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하게 일상으로 받아들인 나머지, 그게 일상에서 사라졌을 때 얼마나 큰 타격이 될지 상상해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승선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는 그 빈자리가 꽤나 크다는 사실을.
브런치 작가인 소람 작가님도 <오늘도 혼자 클럽에 갑니다>라는 작품을 쓰기 전에는 클럽이라는 소재가 당신에게 너무 일상이라 그게 글로 쓸 만한 소재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누구나 당연하게 여길 것 같아서 별로 특이하지 않은 평범한 소재라고 여긴 것이다. 클럽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클럽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호기심을 갖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매일을 채우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래서 불현듯 '인간이라면 당연히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바로 당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버킷리스트일 것이다. 물론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당연해서 인지조차 하기 어려울 테니.
세 번째 방법은 1개월의 유예 기간을 두었는데도 여전히 생각나지는 않는지 판별해 보는 것이다.
내가 팟타이를 버킷리스트에 집어넣었던 이유는 꽤 단순하다. 승선 도중, 처음 팟타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점에 나는 이 또한 다른 '가짜' 버킷리스트처럼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욕구에 불과할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몇 주 정도가 지났을 때 동료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내가 아직도 팟타이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구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난 그 이후로 새로운 물건을 구매할 일이 생기면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스스로 1개월의 유예기간을 둔다. 이 욕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는 한 달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생각나는지 스스로 지켜보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유예기간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다시 아련하게 생각난다면 그건 그 물건에 대한 내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불합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특히 단순히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만으로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가격을 뻥튀기하는 일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해 현명하게 소비하려면 이 소비가 과연 합당한 정도의 소비인지를 객관적으로 가늠해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진짜'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환경이나 공간이 주는 희소성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당신이 골뱅이를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은 진심인가 아니면 환경이 지어낸 환상인가? 진심을 판별해내는 당신만의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물론 나는 골뱅이에 꽤나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