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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냥이 Oct 28. 2020

지구님, 안녕하신지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면 나는 이 이에게 보내고 싶다.

지구님께


지구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구님께 얹혀사는 1천만 내지 1억종 생물종, 그 중 인간 76억 여 명 중 하나인 조그만 여자 사람입니다. 


그간 별 고 없었는지 하는 무례한 질문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녕'하신지 라는 인사치레도 지구님께 웃으며 올리기엔 너무 오만불순하지요. 그래도 달리 대체할 인삿말이 없기에 지구님의 용서를 바랍니다.


지구님의 건강이 쇠약해지고 계시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제 나이 서른 다섯, 초등학생 때부터(그 중 절반 정도는 국민학생으로 살았지요.)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그린 캠페인과 환경 포스터, 글짓기 대회가 난무했으니까요. 


지구님의 안녕에 대해서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라는 말도 있고 저희 인간들이 저지른 오만방자한 실수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만 봐도 꼭 지구님만의 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구님, 저는 이제서야 지구님께 용서를 구합니다만 제가 저질러온 잘못이 큽니다. 


저는 다이어트 중이라 콜라나 사이다 대신 탄산수를 즐겨먹는 편인데, 마트나 편의점에는 400ml 낱개로만 팔기에 이 작은 플라스틱 탄산수 번들을 구입하여 플라스틱 병 30여 개 이상을 프레온 가스로 유지되는 4도어 양문형 냉장고에 짱 박아두었습니다. 먹다남은 탄산수는 지금도 제 노트북 옆에 있습니다.  


지구님, 제가 다이어트 중이긴 하나 오랜만에 뻥튀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아파트 편의점에서 한 봉다리 샀습니다. 뻥튀기는 조금은 불투명한 플라스틱 봉지 안에 가지런히 들어가 있습니다. 뻥튀기가 다 없어지고 나면 이 봉다리는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제 앞에는 남편이 먹다만 와사비맛 땅콩 봉지, 그린머슬과 비타민D, 루테인 등이 들어가있는 플라스틱 약통이 새 것마냥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주방 서랍을 열어보면 그동안 안 쓰고 모아둔 각종 빨대와 플라스틱 식기, 포크와 수저들이 갈 곳 없이 쌓여 있습니다. 미치겠습니다.


지구님, 제가 지구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이나 이렇게 보시듯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미미합니다. 탄산수를 사먹지 말고 뻥튀기도 참는 것이 도리였던 걸까요? 아예 소비를 하지 않으면 될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실천하기엔 자만 손해보는 느낌에 소비를 자행하여 왔던 것 같습니다.(재활용 분류를 잘 하면 되지!)


지구님, 그래도 저는 지구님을 생각하여 미미한 노력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젠가 방송인 타일러 라쉬 씨가 안 읽은 이메일을 방치하면 전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지우는 것이 좋다 하여 이메일함도 싹싹 정리하였습니다. 

플라스틱병을 버릴 때에는 겉면에 부착된 비닐은 말끔하게 정리하고 뚜껑을 분리하여 배출하였습니다.

햄버거가게 드라이브스루에서 음료를 시키면 빨대는 받지 않았습니다. 다행이도 그 가게는 컵 모양을 빨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바꾼 것 같았습니다.

여름에 차를 운전할 때에는 웬만큼 땀이 흘러야 에어컨 온도를 23.5도에서 24.5도로 맞췄습니다. 그래도 손님이 탈 때에는 애타는 가슴을 움켜쥐고 21도로 설정했다가, 손님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23도로 올렸습니다.

또한 전기와 물을 불필요하게 소비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지구님, 제 한 사람의 노력이 지구님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저는 76억 여명 인구 중 한 명일 뿐이므로 저의 행동이 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저의 삶에서 나름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들려오는 소식에선 지구님은 점차 쇠약해져 가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대로라면 기후변화와 온난화로 인하여 몇 십 년 뒤에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이 침수되고, 우리나라 제2의 도시가 반도 형태가 된다고 합니다. 


이 세상 곳곳에는 저보다 더 열정적으로, 전문적으로 지구님의 건강을 위해 땀흘리며 발벗고 뛰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도 그 분들에게만 의존할 수 없어 생활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실천해보았습니다만, 저의 행동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기에, 지구님의 건강 악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무엇을 더 어덯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함에 빠져듭니다.


지구님, 지구님께 대답을 바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그 옛날 국민학생 시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임을 배울 때처럼 봄 되면 진달래가 피고, 여름 되면 수박 서리를 하고, 가을 되면 단풍이나 억새 구경을, 겨울 되면 눈밭 앙상한 가지에서 새순 돋을 날을 기다리는 그런 날을, 당장 지구님께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리고 그런 날을 되돌릴 수 있을까 하고 여쭈는 것도 어불성설이지요?


지구님, 저는 저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테니

여기서 더 나빠지지만 말아주십시오.


지구님의 건강이 우리들에게는 미래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건강에 유념하시고,

안녕히 잘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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