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면 일단 GO
할지 말지 고민된다면 일단 하라.
필기시험을 마치고 적막이 도는 집에서 나는 휴대폰을 켜 수험생 카페 글을 염탐하였고 남편은 조심스레 채점하였다. 카페에서는 이번 시험이 너무 쉬웠다고들 했다. 사람들은 커트라인을 원점수 400점으로 내다보았다. (*총 다섯 과목으로 500점 만점) 근거는 없는 소리였지만 체감상 그러다고들 했다. 저번 시험이 워낙 불시험이라 그런지 이번 건 너무 쉬웠다고. 참고로 400점은 순경 공채 시험이 본격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한 이전의 난이도일 때 흔히들 말하는 커트라인이었다.
나는 물었다. 좀 어떤 것 같냐고. 남편은 음... 하며 문장의 워딩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말을 뱉었다. 못 친 건 아닌 것 같은데, 완전 잘 친 건 아니라고. 나는 고 사이를 못 참고 세간에서 하는 소리를 그대로 옮겼다. 카페에서는 400점은 되어야 한다는데? 남편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 내가 괜히 또... 경솔한 아내는 말을 뱉고 나서야 후회한다. 그렇게 우리는 어색하게 오후를 보냈다.
저녁때가 되자 하나 둘, 수험생 동료들이 남편에게 전화를 주었다.
"형님, 잘 보셨습니까!!!"
남편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목소리 톤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통화를 마친 남편은 내게 말했다. "이번 시험 커트라인 400 아닌 것 같은데..?"
남편은 어느 공무원 시험 전문 사이트에서 운영한다는 합격예측 프로그램에 채점한 점수를 입력해보았다. 순경 공채 공고문에는 최종 선발 인원과 필기시험 선발 인원 및 배수가 명시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합격 예측 사이트에서는 수험생들이 입력한 값과 난이도 등에 따라 전체 입력 인원 중 배수 값을 분석하였다.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것은 이미 들어봤지만 실제로 점수를 입력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편과 나, 둘 다 심장이 들쑥날쑥 뛰고 있었다.
우리가 부부가 되고 겪은 주말 중 가장 조용하게 시끄러운 주말이었다. 우리는 수시로 휴대폰을 살피며 등수가 얼마나 올라가고 내려갔는지를 살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입력 표본이 늘어날지는 몰랐지만 이대로라면 전혀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완전 꼴등도 아니지만 끄트머리 어느 지점에 걸쳐있었다.
그 사이에 수험생 카페에서는 현직 순경을 포함한 시험 경험자들이 친절하게 조언해주고 있었다. 지금 현재 시각 몇 배수 안에 들면 당장 체력시험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경찰 시험은 필기에 못지않게 체력도 중요하다. 당연하지 않은가...? 현장 경찰들은 발로 뛰고 범인을 제압하며 시민들을 돕는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보통 1차 때는 필기시험에서 실기시험까지의 준비기간이 여유롭지 않단다. 필기 시험일로부터 일주일 후에 합격자 발표와 동시에 체력 시험 일정도 같이 공고되는데, 체력 일정은 통상적으로 합격 발표일로부터 2주 정도 뒤에 있다. 즉, 합격자 발표부터 체력 준비를 바로 시작한 사람은 3주 동안 준비할 수 있지만, 늑장 부린 사람은 이미 1주를 까먹고 2주 동안 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리하다는 뜻이다.
바로 체력 준비를 해야 할까? 하면서도 여전히 참 애매했다. 그러나 계산 상으로는 남편의 점수는 필기 선발 1.6 배수 안에 명백하게 들어가 있었다. 나의 계산기는 전자식이라 결코 틀리지 않았다. 이를 두고 카페에서는 '문 닫고 들어간다'라고 표현하였다. 운 좋게 체력 시험을 칠 수 있는 입장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전망하면 김칫국을 마실 수도 있다는 뜻도 되었다.
남편의 내면에서는 두 목소리가 양극단에서 아우성쳤다.
'안정권도 아니잖아. 합격 발표까지 고작 일주일인데, 조금만 기다렸다가 확실해지면 체력 학원에 가자.'
'무슨 소리!! 운동 시작하고 안 하고의 공백이 얼마나 큰데! 어떻게 체력을 안 할 생각을.'
1%의 가능성에 희망을 거느냐, 마느냐.
남편은 필기시험 한 달 전에 다녔던 체력 학원 선생님에게 연락하였다. 선생님과의 상담 후, 남편은 일단 Go! 하여 내일부터 학원에 나가기로 했다.
첨예한 내면의 두 목소리를 순식간에 잠재운 갈등의 기준은 의외로 단순 명료하였다.
마, 경찰이 체력이 중요하나, 안 하나?
체력을 안 한다는 거는 경찰을 하겠다는 소리가, 아니가?
체력시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후술 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남편은 몸 풀면서 합격자 발표 공고일까지 단 5일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 단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