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다졌던 각오도, 반복되는 생활도 어느 순간 무뎌질 때가 있다.
수험생은 누구나 공무원이 되는 꿈을 꾼다. 그래도 수험생도 사람인지라 처음의 목표도, 꿈을 꾸느라 설렜던 순간도 어느 순간 퇴색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이 악물고 버티는 남편에게도 무뎌지는 순간이 오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뎌지는 순간과 해결책을 아내인 내가 제공한 일이 있었다.
딱 시험 세 달 전이었다. 우리 부부는 임신 성공이라는 기쁨도 잠시, 어김없이 찾아온 입덧에 혼란을 겪었다. 입덧은 신세계였다. 평소 부지런히 밥 잘 먹었던 내가 밥 냄새와 새빨간 고기와 김치의 비주얼을 참지 못하여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으니 말이다. 나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였고, 하루하루 빵과 딸기로 연명했다. 소파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다가도 다시 울렁이는 멀미에 다시 그 자리에 쓰러지곤 했다.(입덧 약은 미련하게도 겪을 입덧 다 겪고 나서야 처방받았다.)
이런 아내를 우리 남편은 끔찍하게 사랑했다. 밥도 못 먹고 누워있는 아내가 걱정되어 저녁밥 때쯤 귀가하여 아내의 저녁밥을 차려주고는 작은방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 남편은 실강파이자 독서실파였지, 집공부파는 못 되었다. 집은 휴식하는 공간이므로 남편은 저도 모르게 집공부의 안락함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참다 참다가 하필 남편이 집공부를 할 그 시기에 넷플릭스 한 달 무료 이용권을 끊고는 남편이 작은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 리모컨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숨죽여서 티브이 속에 빠져들었다. 남편이 집에 있을 때에는 최대한 티브이도 틀지 말자, 그리고 넷플릭스도 시험 끝나고 남편과 같이 보자고 마음먹었으나... 빨간 N 자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우연찮게 유튜브에서 발견한 예전 드라마를 잊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 마시러 방에서 나온 남편이 그 드라마를 우연찮게 보게 되면서,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 격으로 남편의 경찰공무원이라는 열정은 다시 살아났다.
4. 시청각 자료를 이용하여 살짝 다운된 열정 일으키기: 드라마 '라이브'
'라이브'는 2018년에 방영된 드라마로,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일하는 경찰들의 이야기나 고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그간 만들어진 경찰 드라마 중 가장 현실을 잘 묘사하였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우리는 이런 드라마가 방영됐었는지도 몰랐다. 이광수, 정유미가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여 업무 강도로 악명 높은 지구대로 발령을 받고 불과 시보 기간 내에 묻지 마 살인사건, 성범죄 피해자 조사 등 사건사고를 겪으며 경찰로 성장해 나가는 내용이었다. 물론 우리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시보도 안 뗀 정유미가 국비 유학을 신청할 때 나는 빵 터졌다.) 그래서 남편이 '꽂혀버린' 장면은 따로 있었다.
- 제복 입은 신임 경찰관들이 순찰차를 닦고 청소할 때
- 정유미와 선배 경찰관이 순찰을 돌 때
- 사수와 부사수인 배성우(오양촌C)와 이광수가 팀워크를 이뤄낼 때
남편은 중얼거렸다. '나도 언젠간 이렇게 될 수 있겠지?' 그리고 이틀 뒤 남편은 내게 말했다.
"여보, 미안한데 입덧 약이라고 있다고 했나...? 이번에 병원 갈 때 물어볼까?"
남편은 나를 병원에 데려다줬다가 집으로 에스코트하고는 금방 독서실로 달려갔다. 나는 다시 도시락 두 개를 싸기 시작했다.
5.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리기
멘탈을 부여잡고 동기부여를 지속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다. 현재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떠올려보고, 이를 현실로 이뤄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수험생에게 가장 건강한 열정을 심어준다. 우리 남편에게 그것들은 '아내와 올여름에 나올 우리 아기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우리 남편은 가장의 무게에 점점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수험생 중 우리 남편만 최고로 절박하고 힘든 것은 결코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어떤 이는 20, 30대의 전부를 공무원 시험 준비에 쏟아부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집안에 아픈 어른이 있을 수도, 혹은 지쳐가는 연인이 있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타협하면 안 되는 극한의 상황이 있다.
남편은 가끔 집중이 되지 않는 사각형의 책상 앞에서, 그리고 달빛만 보고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언제나 사랑하는 아내와 또 똑같이 사랑을 쏟아붓게 될 아이를 떠올렸다. 그러기 위해선 '이 상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