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나
3주 정도를 체력훈련에만 매진한 끝에 그 날이 왔다. 남편은 체력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불과 1년 전, 남편은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될 심적인 고초를 뼈저리게 느꼈다. 기숙학원에서 내려와 세 번째로 응시하였던 필기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한 후 우연찮게 체력 학원 근처를 지나다, 그 전 고시학원에서 같이 공부하였던 사람이 다른 학생들과 기분 좋게 웃으며 대학교 대운동장에 가던 모습을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었던 것이다. 남편은 내가 저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던 남편이 요즘은 매일매일이 행복하다고 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낮 시간이면 갑갑한 독서실에서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되면 식어버린 유리용기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있었는데, 예전에 아픈 기억이 있던 그 체력학원에서 필기시험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간 남편은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히 운동을 해왔었다. 기숙학원에서는 일주일에 3일 정도, 하루 3시간을 기초체력 운동에 매진하였다. 이번 시험 한 달 전에는 혼자 집에서 운동하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일주일에 두 번 학원 예비반에 등록하여 운동을 했었고, 교정받은 달리기 방법을 적용해보기 위해서 매일 공부를 마치고 독서실에서 집까지 2.5km를 뛰어서 귀가했다.
꾸준한 연습으로 자신감이 붙었는지, 남편은 필기시험 합격자 공고가 뜨자마자 아무 고민 없이 스포츠용품 매장으로 달려갔다. 100미터 달리기에 적합한 신발로 유명한 러닝화를 발에 맞춰보았다. 주인아저씨의 권유(영업)로 운동선수들이 입는 짧은 쫄바지도 하나 장만했다.
체력시험은 이틀 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째 날에는 실내종목(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악력)을, 하루 건너뛴 둘째 날 시험에서는 실외 종목(100미터, 1000미터 달리기)을 쳤다. 점수는 연습했던 대로 잘 받았다. 남편은 목표로 했던 점수보다 못 나왔다며 입을 삐쭉거렸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고득점이었다. 남편의 필기시험, 체력시험, 가산점을 포함한 합산 점수는 안정권에 속하게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필기시험 커트라인을 넘겼으나 체력에서 역전시키고 만 것이다.
나는 체력시험에 가족과 친구가 동행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규정상 불가했고, 아마 가능했더라도 내가 옆에 있으면 오히려 남편이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궁금증을 하나 하나 물었다. 시험칠 땐 어땠어? 악력할 때 진짜 악! 소리를 질러? 100미터는 어땠었어? 그리고 물었다. 힘들 때는 어떻게 버텼냐고.
남편은 대답했다. 그럴 땐 나와 뱃속의 우리 아기를 생각했다고. 자기에게 힘을 주는 유일한 존재들을 떠올리며 제발 나에게 힘을 달라고 하며 이 악물고 버텼다고.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정자세로 재빠르게 올려치다가도 힘이 빠지는 순간이 왔을 때, 우리를 떠올리면 초인적인 힘이 났다고 하였다.
"초인적인 힘이 나는 건 무슨 느낌이야?"
"음, 힘들다는 느낌이 사라지는 느낌."
100미터 달리기에서는 스타팅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지면에서 발바닥을 떼어 감독관에게 부정출발 경고를 받았었다고 하였다. 한 번 더 반복하면 실격 처리를 한다는 말에 남편은 우리를 떠올리며 금방이라도 나갈 것 같은 멘탈을 잡았다고. 또한 1000미터 달리기에서는 마지막 100미터를 남겨두고 운동장이 떠나갈 듯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전력질주를 했고, 그 결과 만점이자 2등으로 들어왔다고 하였다.(몇몇 응시생들은 남편을 따라 뛰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씻지도 않고 거실에서 곯아떨어졌다.
현재 남편은 마지막 관문인 면접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학원 면접 스터디에 참가하기 전까지는 덩치에 맞지 않게 한껏 떨었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금방 적응을 하여 또 기쁜 마음으로 제 할 일에 임하고 있다.
내가 남편이 열심히 달려온 기록을 글로 기록한다고 하자, 남편은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내가 적고 싶으면 적으라고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의 마지막 글에 다다르자 나는 처음으로 남편에게 제목을 뭘로 할지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중요하다?"
그간 남편은 연이은 실패에 조금은, 아니 많이 위축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위축되고, 가끔씩은 침잠하면서도 애써 담담하게 힘들지 않다고 웃어 보이던 모습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런 남편이 이제는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사람으로 돌아오고 있다. 얼굴과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어른스럽고 당찼던 예전 모습이 점점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 남편은 원래 잘생기고 멋있었지만 한층 더 성숙하고 늠름해지고 있다.
우리 남편,
최종 합격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결과를 성취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