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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Feb 18. 2016

무전, 살캉하게 씹히는 어른의 맛

  텃밭농사를 지은 지도 벌써 6년. 처음엔 모든 것이 미숙하고 신기했지. 난 원래 열무 씨앗이 보라색인 줄 알았다.  너무 이뻐서 호들갑을 떨면서 블로그에 소개한 적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소독을 한 거더만. 그렇게 낯 뜨거운 순간도 참 많았다. 조그만 씨앗들이 메마른 땅을 뚫고 나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은 언제나 기적처럼 보였다. 



  연차가 조금씩 쌓여가면서 슬슬 작물에 대한 욕심도 생겼다. 이것저것 참 많이도 심었지. 근데 10평 남짓한 밭에서 나오는 작물들을 다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많은 분들이 텃밭농사는 심고 가꾸는 것만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천만의 말씀. 다 자란 녀석을 뽑아서 시든 부분 잘라내고, 집에 가져와 씻고 저장하거나 조리하는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심다 보니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많이 버렸다. 부끄러웠다.


  재작년부턴가 좀 변화가 생겼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단순하지만 다양하게'. 심는 작물은 우리 가족이 주로 먹는 것들로 최대한 단순하게 심고, 대신 수확한 녀석들을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를 하게 되었다. 텃밭농사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미숙한 솜씨로 만든 것들이지만 텃밭을 가꾸고 수확한 녀석들을 이용한 음식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금도 많은 텃밭지기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시들어버린 상추나 시금치 등속을 들고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걸어가고 계실 테니까.




  처음이니까 뭘로 시작하면 좋을까. 계절이 겨울인 만큼 무가 좋겠군! 일반적으로 가을 텃밭농사는 김장을 위한 작물들을 많이 심게 된다. 그래서 대표선수는 바로 배추와 무.  


  그런데 우리 집은 배추를 심지 않는다. 배추는 벌레가 많다. 제대로 키우려면 그 많은 벌레를 일일이 잡아줘야 한다. 그것도 매일 새벽에 나가 한 잎 한 잎 배추 이파리를 다 까 봐야 잡을 수 있다. 맞벌이하는 입장에서는 불가능. 그렇다면 결론은 약을 쳐야 한다는 건데, 우리 가족 건강한 먹거리와 환경을 생각해서 시작한 텃밭농사인데 그렇게 하기 싫었다. 그래서 배추는 한 두 포기만 심어서 배추 된장국이나 쌈으로 먹었다. 그 정도는 감당이 가능하니까. 그리고 김장 담을 요랑이면 생협이나 유기농 매장에서 건강하게 기른 배추를 질 좋은 천일염으로 절여서 많이들 팔자나. 


  그래서 우리 집 가을농사의 간판은 무다. 무는 맛과 영양은 말할 것도 없고 참 쓸모가 많다. 김장 속 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섞박지나 깍두기로 담아두면 겨울철 별미가 된다. 그 뿐인가. 가을무로 끓인 소고기 무국을 싫어할 한국사람이 누가 있을까. 게다가 새빨간 고춧가루 넣고 무친 무생채는 이맘때 해 먹는 비빔밥에는 빠질 수 없는 재료다.  


작년엔 무 농사가 아주 잘 됐었지


  그렇지만 내가 오늘 소개하려는 무 음식은 좀 특이하다. 바로 무전! 무로 전을 부친다고? 우리 고향에선 잔치나 제사 때 배추전과 함께 무전이 빠지지 않았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 정도 이야기하면 어느 곳에서 나고 자랐는지 아실 듯. 바로 대구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배추전이랑 무전 참 많이 해주셨지.


  그땐 그게 그렇게 싫었다. 맛은 덜척지근하고 식감은 느물느물한 게 왜 그리 이상하던지. 깍두기는 사각사각하니 맛있는데 이런 걸 어찌 먹나 싶었다. 그래서 밀가루 껍데기만 벗겨서 간장에 찍어먹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워하시던 할머니의 눈빛이 생각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이상하던 무전이 맛있어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키운 가을무는 하지 감자만큼이나 부드러워서 느물거리지 않고 살캉하게 씹혔다. 저절로 입안이 상쾌해졌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듯 덜척지근하던 것이 어찌 이리도 달게 느껴질까. 그렇지만 설탕처럼 인공적이고 부담스럽지 않아 좋았다. 그제서야 할머니의 눈빛이 왜 그리 안타까웠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도 나이가 든 거겠지.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일단 무를 반으로 갈라 3미리 두께로 얇게 자른다(아마도 할머니의 무전은 너무 두꺼워서 내가 그리도 진절머리를 쳤나 보다). 그리고 소금을 넣고 끓는 물에 삶는다(너무 푹 삶지는 말자). 



그 사이에 반죽을 만든다(난 부침가루랑 계란을 물에 섞었다). 농도는 묽게. 풀빵 반죽 정도의 농도라고 보시면 되겠다. 참, 반죽에는 쪽파를 좀 다져서 넣으시길. 없으면 어쩔 수 없지만 넣으면 한결 맛있다. 삶은 무를 꺼내 식힌 다음 반죽을 묻혀 지져내면 끝. 기름은 꼭 들기름을 쓰시고,  양념장은 그냥 양조간장에 물 조금 넣고 식초 넣어주면 된다. 



  작년에는 가을 무 농사가 잘돼서 김장할 때 속으로 쓰고 이것저것 해 먹었는데도 꽤 많이 남았다. 조금 물린다 싶을 때 생각나 무전을 부쳤다. 저녁에 퇴근한 아내가 좀 뜨악해하더니 한 입 베어 물고는 그 맛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날 저녁 막걸리도 꽤 마셨지 아마.



  그러니 혹시라도 김치냉장고에 남아있는 무를 보고 한숨 쉬고 계신 텃밭지기들 계시다면 주저 없이 오늘 저녁 무전을 해보시라. 무가 없다면 지금 바로 슈퍼로 달려가시고. 물론 막걸리 한 통 같이 업어오는 센스는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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