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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코 Jun 06. 2020

이 강아지, 데려오지 말걸

꿈이 건드리는 것들


꿈에 나오는 장소나 사람, 물건들은 무슨 이유로 구성되는 건지 궁금하다.

하루 종일 생각했던 것이 나타나면 그렇게 생각해댔으니 꿈에 나올 만도 하지, 싶다. 영 생뚱맞은 것이 나타나면 대체 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인지 이해조차 되지 않는다. 생뚱맞은 꿈임에도 그 속의 요소들이 정교할수록 궁금해진다. 꿈을 꾼 날, 우연히 마주친 무언가가 내 의식과 무의식 중간 어디쯤을 건드려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꿀만한 꿈이든, 영 생뚱맞은 꿈이든 상관없이 꿈은 때때로 얼얼할 정도로 현실을 흔들고 간다.

내 꿈에 나온 강아지는 7월 21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아이가 눈조차 뜨지 못하는 새끼일 때 처음 만났다. 이웃집 강아지가 낳은 새끼들 중 한 마리였다. 어두운 개집 안에서 여섯 마리의 새끼들이 낑낑거리며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어린 강아지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갓 태어난 생명이라는 사실이 경이롭기도 했고, 작지만 오밀조밀한 생김새가 사랑스럽기도 했고, 너무 작고 약해 보여서 무섭기도 했다. 매일 그 집에 놀러 가 개집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웃 아저씨는 내가 놀러 와 넋을 놓고 한참을 구경을 하고 있으면 '한번 안아볼래?' 하며 새끼 강아지를 품에 안겨주셨다. 초등학생의 두 손바닥 안을 간신히 가득 채우는 작은 생명체 안에 심장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손바닥을 타고 내 몸까지 전달되는 심장소리를 내는 게 이 작은 강아지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진짜 네 심장이 내는 소리야? 말도 안 돼. 큰 심장 박동이 이 작은 강아지를 아프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머리를 깊이 숙여 연분홍빛 작은 코에 내 코를 맞대고 코뽀뽀를 했다. 젖 냄새인지, 새끼 강아지 특유의 냄새인지 모를 비린내가 났다.


강아지를 키우자고 부모님을 졸라댔다. 내가 똥 잘 치울게, 밥도 내가 챙겨 줄게, 진짜 잘 놀아줄게, 나 공부도 열심히 할게 등등등. 종이에 내가 지키겠다는 약속들을 줄줄이 적어 PT도 했다. 매일 학교가 마치기 무섭게 이웃집에 출석 도장을 찍어대며, 그 강아지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내가 얼마나 함께하고 싶은지를 연설한 끝에 부모님에게서 마침내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내가 집 앞에 쭈그려 앉아있으면, 다른 새끼들을 마구잡이로 밟으면서 내게 다가오던 까만 강아지를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젖을 뗄 무렵, 이제는 심장 박동 크기만큼은 자란 그 강아지를 품 안에 꼬옥 안고 왔다. 거실 한편에 작은 개집이 마련됐다. 짧둥한 다리와 꼬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행복했다. 부모님은 침대 위에 오줌을 쌀 수도 있으니 절대 침대 위에 올리지 말라고 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잠들면 몰래 품에 안고 방안에 데려와 침대에 눕고는 내 심장 위에 올려 자장가를 불러줬다. 심장 소리의 속도가 맞춰지고, 작은 숨이 색색거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오면 조심스럽게 제 집에 도로 눕혔다.


새끼때는 온통 검은 털이었는데, 커면서 황금색 털이 자라났다. 보고싶다.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지만,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 연이어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몇 년을 함께 살지 못했다. 내가 휴학을 하고 다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못해준 것들을 살뜰하게 해 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새로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간식을 들고 있으면 시키지 않았는데도 훈련받았던 앉은 자세로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과는 다르게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반긴다는 것을 알았다. 미용을 하러 갔다가 분리불안이 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너는 얼마나 외로웠던 걸까. 산책 초반 5분을 신나게 뛰고 나면 헐떡거리다 주저앉을 정도로 체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너는 어느새 늙어있었다. 강아지의 시계는 인간의 시계보다 빠르게 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나는 속도를 맞추려 하지 않았을까. 주저앉아 헥헥거리면서도, 산책 나왔다는 것에 신나 열심히 꼬리를 쳤다. 그 옆에 쭈그려 앉아 숨을 고를때까지 기다린 뒤, 그를 품에 안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너를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지 말걸 그랬다. 결정할 수 있는 능력도 돈도 시간도, 어느 것 하나도 없는 초등학생 주제에 감히 생명을 키워보겠다 떼를 쓴 것을 후회한다. 강아지의 수명, 10년 이상의 생을 책임진다는 의미의 무게와 따르는 책임을 하나도 모르면서 어떻게 데려오자고 말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옆에 두고 쓰다듬고 함께 놀고 싶다는 어렸던 내 이기심이 원망스럽다. 그런 것을 깊이 헤아리기에 그때의 내가 어렸다는 것이 변명이 될까? 변명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떨어진 시간들, 그 시간 동안 무책임하게 잊고 있었던 것들, 남은 가족들이 잘해주겠지 따위로부터 시작된 죄책감을 갖는 것조차 죄처럼 느껴졌다. 헤아릴 수 없는 크기의 미안함과 죄의식을 아주 조금씩, 티끌씩 갚아가고 있었다.

마지막은 데려올 때처럼  안에  안은 채로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냈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른이 엉엉 소리 내며 우는 것을 힐끗대며 지나갔다. 창피하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울다 보니 바짝 말라붙은 목에서 꺽꺽대는 소리가 났다.  자격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참기엔 비집고 나오는 울음이 너무 컸던  같다.


꿈에 나온 강아지는 새끼 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손을 뻗으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듯, 쓰다듬어 달라고 했다. 짧둥한 네 다리와 꼬리를 힘차게 움직이면서. 꿈은 그게 전부였지만,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침대에 누워 손을 폈다 접었다 반복했다. 꿈임에도 손바닥에 느껴졌던 촉감과 온도가 너무 생생했다. 그러고 보니 그 날 산책 나온 다른 사람의 강아지를 잠시 쓰다듬었었다. 신나서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고 있는 강아지였다. 그게 건드린 무의식과 의식 중간 그 어디쯤이 너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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