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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코 May 08. 2020

일기는 우울할 때 술술 써지더라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팡팡 터지는 게 느껴지는, 뇌가 지끈할 정도로 행복한 순간들은 드물지만 간혹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때에 오히려 기록에 게을러진다. 나는 우울할 때 일기장을 펼친다. 과거의 일기장들을 들춰보면, 하루하루를 기록한다는 본래의 의미보다는 우울의 기록에 가깝다. 비스무리하게 흘러가는 나날일지라도, 디테일이 다르고 그걸 기록하는 일 역시 소중하고 즐거울 수 있는 건 맞지만, 그런 기록들에도 난 역시 게으른 편이다. 반면 우울은 다르다. 기다렸다는 듯이 막힘 없이 써진다. 내 마음 어디가 어떻게 아팠고, 그게 나한테는 얼마나 비참하고 처참한 경험이었는지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소설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묘사가 폭팔한다(문장력과는 별개인 것이 안타깝지만). 그렇게 대꾸 없는 종잇장에 내 우울을 와다다 쏟아내고 나면 개운함과 함께 꽉 찬 페이지가 남아있다. 이런 몰입 넘치는 기록의 경험은 우울이 늘 시작이었다.

행복이나 소소한 일상보다 우울이 더 세게 일기장을 당기는 이유는 뭘까.



특별하거나 힘들거나



 기분이 가장 큰 이유겠거니 생각한다. 나는 우울할 때는 아주 낮은 곳에서 감정들이 높게 출렁대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심해 속에서 파도가 마구자비로 출렁이는 느낌이다. 내 우울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은, 글을 휘갈기기에 딱 좋은 상태인 것이다. 신나고 행복할 때는 도저히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도 없다. 우울할 때의 내 감성은 늘 새벽 3시쯤이다. 평소엔 떠오르지도 않는 감정적인 표현도 뱉어낼 수 있는 새벽 감성. 충분한 재료와 완벽한 환경. 벌써 한 페이지다. 그렇게 채워진 일기장은 당연히 해피할 수가 없다. 최저 지점은 갱신해도 최고 지점은 늘 0 아니면 +1 정도인 롤러코스터의 반복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우울을 써 내려가는 일이 좋다. 곱씹어보면, 그 과정이 오직 우울만을 쏟아내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울을 꾹 꾹 써 내려가는 와중 마음 한편에는 '나중에 괜찮아진 후에 이걸 보면 이땐 이랬지 하며 피식 웃을거야.' 라는 기대와 희망도 함께 있다. 얼핏 보면 우울함만 덕지덕지 붙어있는 듯한 페이지이지만, 옅게나마 기대와 희망도 숨어있다. 시간이 지난 후 그 페이지를 펼쳐놓은 뒤 '그래도 잘 이겨냈네. 너 지금은 완전 괜찮아.' 라는 한 줄을 덧쓸 때, 다음 기대와 희망을 걸 힘이 생기기도 한다. 종종 내 마음이 얼마나 단단한지 모르겠고, 대체 나이는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도 여전히 물러 터진 것 같아 자신감이 떨어질 때, 다시 펼쳐보기와 덧쓰기는 꽤 좋은 약이 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별 거 아닌 것 같아, 안크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좀 컸네. 이렇게까지 힘들었는데도 이겨냈던 적이 있네, 은근 기특한 포인트들이다. 우울의 기록만이 가득해 보이는 일기장은, 결국은 내가 지나 온 희망과 성장의 기록으로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기장들은 인내심이 아주 아주 훌륭한 편이라 편견이 없을 뿐 아니라, 무슨 말을 하든 판단도 하지 않으며 내 징징거림을 가만 들어준다. 내가 잘못한 걸 알면서도, 짜증은 내고 싶은데 이기적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 않나. 그냥 내 기분 좀 알아줬으면 할 때 말이다. 그런 때마저도 일기장은 그 누구보다도 내 편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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