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의 기록)
그런 기분이 있다. 작심삼일의 첫날,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해낸 뒤 은은하게 엄습하는 불길함 말이다. 지금과 같은 열정과 성실함으로 마지막까지 달리지 못한 미래의 내가 보내는 신호의 메아리를 감지한 기분. 그 기분을 학기초에 느꼈더랬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아무래도 내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미래의 나인 것 같다.
학기의 중반 이상을 접어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 활동이 가능하지 않은 동시에 필요도 없어진 요즈음, 스스로가 스스로를 잡아 주지 않으면 와장창 무너질 수 있는 방치 속에서 나의 알람 없는 삶은 주욱 이어지고 있다. 지난 일주일은 이스터 홀리데이 기간이었다. 평소였다면 덴마크 사람들 뿐 아니라 교환학생들 모두 날래 날래 여행을 떠났을, 수업이 통째로 없는 그런 짧은 방학이었다. 그 일주일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생산성 제로에 가까운, 잉여로운 방학을 알차게도 즐겼다. 사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방학은 방학다운 의미도, 변화도 딱히 없었다. 그런데도 뭐랄까, 그나마 하던 일들도 다 내던졌다고 해야 할까. 급격하게 꺾인 생체 리듬 핑계를 대기에는 스스로 머쓱할 정도로 유독, 유독 한심한 나날들이었다.
복습하기로 했었던 수업 자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매일 하기로 했던 영어 공부나 팟캐스트 리스닝, 개인적인 공부도 손을 놓았다. 핸드폰 게임을 설치해서 (가든스케이프 최고) 몇 시간 내리 붙들고 있기도 했고, 새벽 4시에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학기 초, 공부 미리미리 하고 여행도 틈틈이 다니는 교환학생 생활을 보내야지 라는 의지가 가득한 채로 도서관에 앉아 예복습을 철저히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그리고는 노트북 액정이나 깨먹었더랬지) 그 당시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문득, '아 이 성실함, 이 열정, 이때뿐이면 어쩌지.' 하며 미래의 나를 의심했었다.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학기 초때 하는 만큼 학기 말까지 주욱 하면 못할 일이 없겠다고. 정말로, 나는 내가 제발 좀 꾸준했으면 좋겠다.
생산, 효율, 성실함의 관성이 아주 질긴 사람은 타고나는 걸까? 습관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내일부터는 진짜 열심히 해야지, 하고 일어나서 정말 열심히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5시까지만 웹툰 보다가 딱 5시부터 시작해야지 하고 나면, 5시 1분이 되기 전 핸드폰을 쿨하게 덮고 책을 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할 일 메모장을 쓴다면, 365일 차에 두툼한 과거의 기록 위에서 1일 차 때와 같은 마음으로 그 날의 체크리스트를 기록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가 유독 한심해서, 그래서 더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전까지는 나름 그럭저럭 하루를 관리 해왔으니까, 이렇게 생각 없이 내리 쉬는 날들도 좀 있어야지 하며 일단은 스스로를 합리화해본다. 예전에는 잘 먹혔던, 생산성을 예리하게 다듬는 나만의 꼼수들도 먹히지 않았던 철옹성같은 기간이었다. 방학이 끝난 내일부터는, 다시 무기력을 잘 내쫓고 잘 달려보자. 내가 어디까지 꾸준할 수 있는지, 내일부터 확인해볼 수 있겠지 뭐.
(*Update : 이렇게 자조하고 난 뒤에는 그래도 뭘 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