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은 내 정신이 아니라 몸이 온 힘을 다해 거부하는 어려운 일이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 주말이나 휴일이 되기만 하면 오후 2~3시까지 자곤 했다. '야, 너는 진짜 의지로 회사 다니는구나' 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매일 밤마다 '내일 출근하려면 지금 자야만 해. 지금 자도 몇시간 밖에 못 자' 라는 굴레에 빠졌던 시절에는 저 망할 스펀지밥의 두 개 밖에 남지 않은 강냉이까지도 마저 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스펀지밥보다 훨씬 더 행복한 마음으로 월요일을 맞고 있다. 요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다 못해 사라져 버린 요즘, 나의 알람 없는 삶은 꽤 행복하다.
알람 없는 삶이 가능해진건,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굴러가는 방법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모든 수업들이 온라인으로 대체된 것은 물론이고, practical 한 과제 수행을 위해 진행되는 조모임과 TA session 도 Zoom이나 skype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성적에 반영되는 중요한 시험 방식들도 계속 변동 중에 있다. '조만간 공지하겠다.'라는 공지만 나온 수업이 대다수다. 교수와 조교들 모두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다들 이번 생에 코로나는 처음이니까.
그렇게 전세계적으로 모든 대학이 사이버 대학이 되어버린 지금, 등록금이 아깝다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꽤 많이 들려온다. 물론 아깝긴 하다. 작년에 진행되었던 수업의 녹화본 링크를 보내며 '이거 들으세요~' 하는 수업들에 등록금을 낸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깝다. (교수님, 2년 전 강의 링크는 좀..) 그렇지만, 아까운 것과는 별개로 나는 알람없는 삶을 가능하게 해 준 이 사이버 대학 생활이 행복하다. 한국은 학생들도 웹카메라를 켜고 본인 인증(?)을 통해 출석체크를 한다고 하지만, 덴마크는 출석 체크는커녕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지 마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리포트를 쓰거나 시험을 보기 위해 알아서 공부하면 될 뿐. 생각해보면 오프라인 강의가 이루어질 때도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K-교육에 최적화된 본능 때문인지 나는 성실하게 수업에 나가는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나야 했던' 출근때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학기 초반과는 다르게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요즘이 상당히 행복하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왜 잠이 오지 않는 거지 하는 걱정스런 괴로움, 천근만근한 몸을 질질 끌고 어딘가를 향해 가거나, 생산적인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맹렬하게 투쟁하는 뇌를 어떻게든 일하게 해야 하는 고통들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올라갔다.
생각해보면 '적어도 이때는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자' 고 스스로와 약속한 시간에는 일어나려는 노력 정도는 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일어나도 느껴지는 뿌듯함과 가뿐함이 다른 기분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8시에 일어나서 아메리카노를 수혈하는 것과, 토요일 8시에 일어나서 모닝 커피를 즐기는 것 같은 차이랄까. 후자가 훨씬 더 기분 좋은 출발이지 않은가. 나는 지금 훨씬 더 행복하고, 내 컨디션에 훨씬 더 최적화된 리듬으로 수업도 듣고 공부도 하고 있다. 나에게 물리적인 대학은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 오후 1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역시 자주 한다. 우리는 왜 아침형 인간처럼 살게 된걸까? 저녁형 인간들이 자는 동안 아침형 인간들이 그들을 말살시켜버렸다는 (근거는 없다) 선사시대 괴담, 진짜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