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의 기록
가족들과 친구들의 연락을 받는다. 대체 너 거기서 괜찮은거냐, 돌아오는게 낫지 않냐, 뭐한다고 남아있냐, 격리 당하러 덴마크 갔냐 등등등. 물론 적응을 위한 갈등 및 고통의 시간들도 (아마 이 매거진 초반에 해당하는 내용들일 것) 있었지만, 그 이후 나는 잘 살고 있다. 나름 즐겁고 또 단정하게.
덴마크 날씨에서 봄이 슬금 슬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봤자 동네 산책밖에 할 수 없다보니 조금 빡칠때도 있다.) 날씨가 심하게 좋은 날이면 각자 머그컵에 커피를 담아 플랫 메이트와 기숙사 바로 앞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다가 들어오곤 한다. 주말 아침에는 일찍 일어난 친구가 만든 팬케이크를 덜어 먹는다. 갑갑하거나 찌뿌둥하면 캠퍼스 주변을 달리고, 창문을 열어놓고 공부도 하고 라디오도 듣고 글도 쓴다.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남기로 결정한 이후 집중해야 할 것들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인다. 여전히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고 자율학습을 하는 건 쉽지 않지만, 뭐랄까 피할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다.
코로나로 인해 줄줄이 이어진 이별의 시간들도 있었다. 9명이 살던 기숙사에서 절반의 친구들은 자국으로 돌아갔다. 짧은 기간임에도 가까워지고 또 정이 든 친구들이었다. 선택의 여지 조차 없는 상황(싱가폴이나 미국의 경우는 정부 및 교육부 차원에서 강제로 귀국 조치를 내렸기에, 돌아가야만 했다) 이다보니 더 아쉽고 안타까운 인사를 나눴다. 차례차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해야했던 날들은 슬프고 조금 우울했지만, 남은 친구들과 함께 우울함을 털어내고 주변을 정돈했다. 친구들이 나누고 간 생필품이나 음식들을 정리하고, 청소 역할을 다시 정하고, 주방 사용 규칙을 다시 써붙였다. 인기척은 거의 없어졌지만, 더 깨끗해진 기숙사에서 남은 플랫 메이트들과 도란도란 평화롭게 살고 있다.
한국에서 온 친구들 중 몇몇도 한국으로 돌아갔다. 일부가 돌아갔다는 것은, 일부는 남았다는 말과 똑같다. 덴마크 뿐 아니라 유럽 내 다른 국가에도, 남기로 결정한 교환학생들이 생각보다는 많다. 언론이 '줄줄이 귀국행렬인 교환학생들' 에 초점을 맞추고 기사를 쓰고 있으니 전부 다 우르르 귀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언론의 선택적 시선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니 놀랍지 않다만, 종종 기사의 댓글을 보다보면 조금 놀란다. 귀국행을 결정한 교환학생과 유학생들에게 상처가 될 법한 댓글들이 꽤 있어서다. 귀국 후 자가격리에 대한 강조와 우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들을 팔자 좋게 외국 갔다가 한국 상황을 뒤집으러 오는 코로나 캐리어 또는 민폐덩어리 취급을 하는 댓글들은 불필요한 혐오로 느껴진다. 본인의 가족, 연인, 친구가 같은 상황에 있었어도 똑같이 말했을까? '너가 선택해서 유학 간거고, 한국 이제 괜찮아지니까 민폐 끼치러 오지 말고 거기 가만히 있어'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깊은 고민 끝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귀국행을 택한 이들에게, 굳이 그런 댓글을 남겨야 했을까. 코로나로도 지긋지긋하고 지치는 시국에, 코로나로 인한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 서로를 더 지치게 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