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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코 May 23. 2020

<7> 국경 봉쇄 상황에서 유학생은 대체 뭘 어떻게

 

(*3월 15일의 기록) 


 덴마크가 국경봉쇄라는 강수를 내놓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닥쳐 온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한다. 현 시점 덴마크 확진자는 800명을 넘어 섰다. 몇나라의 교환학생(미국, 홍콩, 노르웨이)들은 자국으로 떠났다. 한국 학교측에서는 교환학생을 취소할지 지속할지 회신하라는 메일이 날아왔다. 교환학생을 위한 지원금 환수 관련 조건문까지 쭈욱 읽은 뒤 든 생각은 '취소하거나, 지속하거나 차라리 그냥 학교가 결정해줬으면 좋겠다ㅅㅂ' 였다. 만약 실제로 그런 통보를 받았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게 웬말이냐 궁시렁대 않았을까. 돈, 졸업계획, 기간들을 열심히 따져보아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그 누구도 추이를 알 수 없는 천재지변 상황에서는 도저히 어떤 결정이 좋은 결정인지 알 수가 없다.

결정은 어렵고, 결정에 따라 좌우될 비용은 상당히 큰 상황이니 도피해버리고 싶은 마음에 결정을 위임해버리고 싶어졌다. 평소에는 자율을 그토록 원하다가도 극한의 혼란 상황에 빠지면 자율을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싶은 현상을 설명하는 논문같은거 없으려나? 궁지 증후군 뭐 이런 뭐 말도 안되는 이름일지라도 그런 증후군이라도 없나. 내 의지가 나약한건가. 그냥, 나중에 가서 탓 할 곳이 있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전국 휴교령, 폐쇄, 국경 봉쇄. 살벌한 단어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세계 재난 상황에서, 외국에 떨어져 있는 유학생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될까.    


아아..행복의 나라...where...?


 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할지 내가 결정해야 한다. 나 대신 결정해 줄 사람도, 기관도 없다. 이후에 어떤 아쉬움이든 아주 조금이라도 남지 않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내게 그 선택은 '덴마크에 이왕 살아보러 온 것 열심히 구르다(코로나 밭 위는 빼고) 가자!'  인 것이었다. 돈이나 시간 자원을 두고 비교 해보아도 남는 선택이 낫다고 판단했다. 내가 통제 불가능한 코로나라는 최강 빌런이자 변수는, 음, 덴마크가 코로나 확산세를 어떻게든 잡아보겠다며 내놓은 여러 강수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동시에 새삼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느끼고 있다. 뜻밖의 애국심이 치솟는다.  정보들이 빛의 속도로 공유되고, 진단 검사를 비롯해 의료 체계도 신속하게 잡히고, 마스크 구매 관련해서도 시스템이 착착 돌아가는 디테일까지 잡고 있는 나라는 정말 한국이 유일무이한 것 같다. 와중에 사회적 거리 유지부터 위생 관리를 위한 K-단합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니. 한국에도 물론 K-단합을 벗어나 상식밖의 케이스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마스크를 쓰거나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예외처럼 느껴지는 안이한 유럽 시민 의식보다는 낫다. 이걸 생각하면 다시 돌아갈까 말까 고민이 또 시작되는데, 이왕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린 것 더 이상 고민에 에너지를 쏟지 않기로 했다.    


룸메이트들과 코로나로 시시껄렁한 개그를 치며 논다. 러시아 친구가 보여준 밈.


  

 간간이 다른 유럽 나라를 다녀오려 했던 일정들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덴마크 바깥 공기를 맡는 것도 어려워졌다. 나는 분명 행복의 나라, 복지국 등으로 유명한 덴마크를 누려보려고자 이 곳에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행복의 나라가 전시상황급 시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어서 더 특별하다고 해야하나.
남기로 결정한 이상 아직 덴마크를 살펴 볼 시간은 많다. 사회적 거리 유지를 위해 킹덤 시즌2나 빈지 워칭하자.



(*Updata : 남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고. 한국에는 신천지, 이태원 등 탈 K-단합 케이스가 꽤 많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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