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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Aug 19. 2022

구멍을 통과한 예술

구멍 by. 자크 베케르 

구멍 (1960)


나는 감옥을 가보지 않았다. 그래서 감옥의 구조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죄수들은 감옥의 구조를 파악한다. 그리고 곧장 탈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과정에서 그들은 대부분 감옥의 벽을 뚫어 구멍을 만든다. 하지만 구멍을 만드는 과정도 그들 나름의 협조가 필요하다. 

  

결국 탈옥을 시작할 때 그들은 서로 간의 믿음과 신뢰를 품었다. 하지만 결과로 다가올수록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다가오는 압박감과 또 다른 소문은 그들에게 위협적이다. 결국 탈출까지 다가온 시간도 문제다. 마지막으로 탈출이 다가올수록 필요한 장비가 늘어나면서 구해야 하는 과정 때문에 탈옥 난이도는 더 높아진다. 영화 구멍도 앞서 말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오히려 같은 구조를 취한 영화라서 보다 보면 오히려 지루할 수도 있다. 세련된 컬러영화와 배우들의 화려한 연출이 우리의 오감을 더 만족시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나오면 생각이 달라진다. 나는 오리지널 흑백 영화를 통해 더욱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탈옥이라는 주제를 꺼낸 영화들의 수많은 오마주와 변환된 장면들이 생각났다. 동시에 이렇게 훌륭한 영화 원본으로 인해 만들어진 타 영화들이 이어온 깊이가 떠올랐다.

   

또한 자크 베케르의 구멍은 탈옥 영화의 모든 형식을 완벽하게 정립시켰다. 그래서 여러 주제가 바뀌거나 표현이 달라지지만 과거 시절뿐만 아닌 현대에 와서도 결국 비슷한 형식이 나타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드라마는 복수라는 주제를 덧씌운 느낌을 들게 만든다. 영화 빠삐용은 탈옥이라는 소재를 겹치게 하여 배신과 인간 승리라는 지독한 영광을 구멍이라는 영화와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다. 결국 영화 구멍이  탈옥 영화의 정석이라서 위대한 영화라고 하기 어렵다. 다만 과거를 초월하여 현재까지 이어진 지점을 연결하였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영화 속에서 탈옥을 소재로 한 것이 영화사의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저 탈옥 장르에 대한 관습을 되 물림 하는 정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전통적인 구조가 현대에 까지도 찾아온다는 것은 오히려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는 그 시대에 맞춘 장르에 따라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 장르의 인기가 식거나 폭이 줄어들면 한순간에 그런 영화는 답습을 멈춘다. 

  

그렇기에 영화 장르를 포함한 예술들은 거대한 흐름이 답습하며 새로운 창조를 일으킨다. 창조라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생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산물의 시작은 우리가 봐왔던 오리지널의 변형과 결합이 원천이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오리지널을 따라 하거나 가져다 쓴다면 그건 창조가 아니다. 본능으로 지배되어 만들어진 표절작에 불과하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창조와 모방의 경계는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탈옥 관련된 작품은 비슷한 서사를 가진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런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가져왔을 때 새로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멍의 서사를 컬러와 기존의 주제의식의 변화를 주며 탈옥이라는 의미를 다르게 사용했을 때 비로소 예술은 혁신으로 새로운 것이 된다. 이건 자크 베케르의 구멍이라는 영화의 탈옥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서부극의 형식, 로맨스 코미디의 정석적인 사랑, 공포 영화의 점프 스퀘어 등에서도 잘 나타나는 경우다. 

  

다만 이 문제를 깊게 파헤치고자 한다면 역사의 저편까지 가야 할 것이다. 어렵고도 긴 여정이라 쉽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한 범은 도전해 보기를 바란다. 오리지널 서사를 보며 지금의 과정의 답습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아가는 과정도 영화를 보는 재미 중에 하나다. 자크 베케르의 구멍은 그런 오리지널의 기준이 되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탈옥을 위한 긴 구멍 같은 여정을 현대까지 뚫어서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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