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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Oct 13. 2022

성스러운 역사의 이름 잔다르크

세인트 조앤 by. 조지 버나드 쇼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명을 내리셨습니다. 어서 병사의 옷을 입고 프랑스를 구하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당장 마을을 뛰어 나갔습니다. 프랑스를 위해 나의 신을 위해 말이죠. 마치 영웅의 서사에 나올 법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용맹한 기사도, 영주도, 왕도 아닙니다. 어느 시골의 부유한 목동에게서 태어난 나의 이름은 소녀 조앤. 훗날 많은 사람들은 나를 잔 다르크라고 부릅니다.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세인트 조앤’은 신의 부름을 받은 한 소녀이자 훗날 잔 다르크라고 불리는 여성의 서사를 써냈다. 다만 그녀가 프랑스를 구하고자 노력한 과정과 결과는 이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그녀의 서사를 왜 지금에 와서 다시 이야기했을까? 그녀의 운명은 승리와 배신과 이단이라는 치욕 속에 불길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누구나 그녀를 기억한다. 신성한 잔 다르크 교회의 희망, 승리한 여신. 하지만 버나드 쇼는 그녀의 신성한 운명을 버리고 역사 속에서 남겨진 그녀의 흐릿한 인생을 끌고 온다. 

  

특히나 그는 무대 위에 올라오는 잔다르크라는 인물의 시작부터 끝까지 신성함을 모두 지워버린다. 조앤이라는 인물의 현실적 사실적인 인간상을 담아낸다. 신의 도구로서 쓰일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조앤의 인생은 그러지는 못했다. 아무리 자신이 순수한 신의 목소리를 외쳐도, 모든 것은 신이 아닌 정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만 그녀가 점차 그들의 통제에 벗어나 기득권에 도전할 때 그들은 조앤을 제거하기 위해 교회를 이용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신의 목소리를 듣고 승리했던 순간에 조앤은 영웅이었다. 하지만 교회에서만이 신을 따르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하다며 조앤의 운명을 부정했다. 그래서 조앤은 이단이었다. 모든 것은 자신들이 만들고, 만드는 것이다. 이로서 화형에 처한 조앤은 과연 여기서 끝났을까? 연극이 잔 다르크라는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을 담아냈다면 그냥 전기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버나드 쇼의 선택은 그녀의 운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시 연극을 뒤집는다.  

  

바로 잔 다르크라는 인물의 시대가 지난 이후에도 시골 소녀였던 조앤을 주목한다. 그녀의 인생은 신이라는 운명으로부터 시작된 삶이었다. 어느새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그녀의 이름이 사용된다. 한 번은 교회로 인해 마녀로 불린다. 다시 한번은 프랑스 샤를 7세를 위해 소녀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나폴레옹 시대에는 국가적인 업적을 탄생시킨 위대한 영웅으로 찬송받았다. 그리고 현대에서 와서 교회는 그녀의 기적을 인정하여 성인으로 추앙한다. 그녀의 죽음 이후에 사용되는 이름은 조앤의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순박한 신을 믿은 소녀의 순수성은 결박되어 사라진다. 우리는 불 길 속에 사라진 그녀의 빛나는 성광만을 바라본다. 인간은 모두 도구로서의 사용할 수 있는 잔다르크라는 이름을 주목한다. 하지만 이는 잔 다르크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가 현재에 겪고 있는 사회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웅 같은 존재의 등장으로 사회를 안정화시켰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이 되고나서 필요하지 않은 그를 처단시킨다. 그러다 사라진 빈자리는 그리움 대신 거대한 영광의 기억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그래서 영웅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동시에 분노로 희생당할 대상이었다.  다만 버나드 쇼는 말한다. 여기에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시대에 맞은 인간상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은 기득권으로 공격하는 이들이 아닌 누구라도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 점에서 세인트 조앤은 에필로그가 생각난다. 유령이 되었던 조앤은 기득권이었던 그들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까요'라는 말을 꺼낸다. 하지만 기득권은 찬양하던 손짓을 멈춘다. 그들은 변명과 혐오를 내비치며 자리를 떠나버린다. 

  

그리고 남은 것은 다시 성스러운 이름의 조앤뿐이다. 돌아가도 영웅이 아니다. 화형으로 불에 타 죽을 마녀이자 이단으로서 그녀는 기득권의 입장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그러한 결과는 희곡이자 연극을 통해 영웅에게 남겨진 이름을 반복적으로 부르는 인간을 향한 비극적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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