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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Oct 03. 2023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 by. 루벤 외스틀룬드

슬픔의 삼각형 (2023)

마르크스와 엥갤스의 한 선언이 있다.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계급투쟁으로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혁명을 이룰 것을 주장하는 이론 이른바 공산당 선언. 자본주의 계층의 탐욕으로부터 노동자들 스스로가 혁명에 동참하여 싸워야 한다. 그들은 세계의 자본을 동일선상에 두고 계급적인 한계를 벗어난다. 부자와 천민 사이의 계층은 모두 동등한 인간이자 공산당이라는 하나의 지배시스템 아래에 평등해진다. 거대한 사회시스템을 탄생시키고자 했던 철학에 대해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론을 바탕으로 탄생시킨 국가와 시스템도 자세히 알고 있다. 이미 사라진 소비에트 연방과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중국 그리고 독재국가 북한이다. 

  

세 나라의 시스템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과연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계급주의를 청산하였으며, 만민이 평등한 나라를 만들었을까? 이미 많은 이들은 뉴스 혹은 역사 속에 결과물에 의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계층은 더욱 잔인하게 나눠졌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분류된다. 거대한 시스템을 세워도 반복되는 인간의 욕심은 계속된다. 하물며 조그마한 그룹과 단체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도 우리 사회의 계급문제를 역설적으로 담아냈다. 크루즈라는 공간, 섬에서의 전환된 계급 그리고 여전히 바뀌지 않는 인간의 욕망까지 말이다. 

  

영화는 가장 최고층의 계급을 먼저 보여준다. 권력과 자본으로 무장한 이들이 돈으로 선택될 사람들을 결정한다. 누군가는 외모적인 이유로, 체력적인 이유로 탈락당한다. 단순히 그들의 눈에 들어온 상위 점수를 얻은 이들만이 능력 있는 계층만이 구매할 옷을 입고 런웨이를 가로질러 갈 자격이 주어진다. 잔인한 현실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나보다 더 독보적이고, 강력한 이들이 오면 나의 무력한 현실에 화를 내기보다는 조용히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는 자신의 비극적인 현실을 자해하며 올라가지 못할 계층을 바라보기만 한다. 영화는 그런 현실적인 측면을 통해 사회 구조의 모순을 눌러 담는다. 

  

동시에 영화는 최고위층의 사람들이 뒤집힌 역전된 세계를 자세히 담아낸다. 계층과 계급이 뒤집힌 상황에서 그들은 다시 평등을 부르짖는다. 현실로 돌아갔을 때 자신들이 줄 수 있는 혜택을 제안한다. 하지만 하층의 계급이 리더로 우뚝 섰을 때 평등을 부르짖는 자비는 보이지 않는다. 반복적인 영향력은 위선적인 인간의 욕망을 꼬집는 감독만의 강렬한 한방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과 반전은 관객에게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인간은 누구나 어느 분야 혹은 어느 계급에서 리더 혹은 리더급의 권력을 원한다. 욕심이라는 것이 생기고, 위선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항상 이야기하는 평등과 정의로운 사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의거하여 표현되는 외침이기에 과연 진실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다시 한번 공산당 선언을 언급해볼까 한다.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말을 통해 만국의 노동자를 부르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투쟁의식은 영화에서 뒤집힌 삼각형의 투쟁과 다시 뒤집혀서 계층이 이동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계층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는 점은 아니다. 영화는 이러한 계층론의 부각해 모순점을 웃음거리로서 전락시켰다. 그만큼 우리는 계층에 민감하고, 자본을 가진 위선에 나약하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고심해야 한다. 

  

영화는 "우리가 굴레에 갇혀 살고 있기에 벗어날 수 없다." 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굴레에 빠진 인간들의 상심을 보듬고, 더욱 격렬하게 자본을 향한 태도를 비판하며 우리가 좀 더 나은 계급의 변화를 추구하기를 바랄 뿐이다. 급격한 변화는 계층의 새로운 리더를 만들 뿐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삼각형이 뒤집혀도 새로운 삼각형의 최고 꼭대기 층은 변하지 않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평등을 위한 투쟁을 지속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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