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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를 기억하는 법

세계문화유산 '종묘' [서울 종로구 종로 157]

by 소야
1611766.jpg?type=w800 종묘 : 정전

조선 왕조를 다룬 사극에서는 종종 ‘종묘와 사직’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임금이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 그럴 때마다 신하는 임금을 향해 언급하는 대사가 있다.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소서”라는 표현이다. 여기서 ‘종묘’는 무엇이고, ‘사직’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많은 유튜브에 올라온 지식을 통해 직접 정보를 인식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 글에서까지 ‘종묘’ 그리고 '사직'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고 싶다. 대신 종묘라는 조선 왕조를 의미하는 건축의 미를 나만의 느낌과 경험을 토대를 담고자 하는 바이다.


내가 종묘를 처음 가본 것은 대학생 때 일이다. 전공은 분명히 국어국문인데 나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교수님과 함께 전국 팔도의 역사 유적을 보는 답사를 떠났다. 역사학과도 아닌 나에게 첫 답사는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교수님과 함께 떠난 첫 번째 답사지역 서울은 39도가 넘는 여름이었다. 태양이 그늘 한 점 내어주지 않아서 모두가 더위에 지쳐있을 때였다. 거기다 대학생의 주말을 뺏어서 저녁 늦게까지 서울이라는 지역을 걸어 다니며 지루한 역사지구를 간다는 건 꽤나 고역이었다. 특히나 역사지구를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문학자료와 교수님의 장대한 강연이 시작되면 제정신을 차릴 여력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종묘에 도달했을 때는 생각이 달라졌다. 여름의 태양이 한풀 꺾인 오후의 한낮에 종로는 웅장한 건축물로서 위엄을 선보였다. 당시에 오전만 해도 찾아갔던 경복궁이 웅장했지만 건축적인 재미가 없었고, 창덕궁이 아름답지만 자연의 미를 보는 시야는 내게 부족했다. 결국 나에게 역사답사는 재미없고, 밋밋한 전경을 따라 행렬하는 서울의 옛 건물들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했을 때였다. 하지만 종묘는 그때 지나쳤던 서울의 궁궐과는 달랐다. 정문을 넘어 바닥에 널찍하게 깔린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01._%EC%8B%A0%EB%A1%9C_%EB%B4%84.jpg?type=w800 종묘 : 신로

왕이 행차하는 길이기에 가운데 길을 피하여 신하들이 걷던 길로 줄줄이 교수님을 쫓아가면서 무언가 묘한 신력을 느꼈다. 그리고 정전에 도달했을 때 종대에서 횡대까지 긴 나무 건축물이 펼쳐진 멋은 가히 잊기 어려운 기억이 되었다. 하지만 종묘를 단 한 번에 사랑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조선의 건축적인 미에 새로움을 느끼기보다는 종묘제례의 의미를 두고 강의하시는 교수님의 말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한 명씩 내 동기 선배들이 정전의 밖을 빠져나갔다. 나 또한 정전을 나가기 전 잠시 지긋히 바라볼 때 알았다. 19개의 방을 따라 길게 뻗어진 목조로 만들어진 신전과도 같은 침묵하는 건축의 미. 조선을 세운 왕조와 조상들이 추구했던 미학을 정수로 끌어올린 것 같았다. 마치 그 순간의 공간에서의 짧은 탄식을 내뱉고, 나는 침묵할 수 있었다.

GdxID7xbAAEFZ4g?format=jpg&name=small 출처 - 종묘 트위터

그 뒤로 잊힌 종묘를 다시 찾게 된 것은 5월의 종묘제례악을 보기 위해 간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찾아본 배병우 사진작가의 겨울에 찍은 '종묘' 사진을 보고 나서 결심하게 되었다. 눈이 소복이 내린 정전의 풍경에 내가 그때 봤던 탄식과 침묵이 서려있었다. 그래서 겨울이 왔을 때 그리고 첫눈이 내렸을 때 그 순간을 감상하기 위해 종묘로 떠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늦은 아침에 찾아와서 그런지 정전의 눈은 발자국으로 뒤덮였다. 그래도 지붕부터 바닥까지 하얀 눈이 모든 것은 끌어안은 듯한 풍경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완벽에 가까웠다. 그 뒤로는 종묘라는 건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내가 끊임없이 종묘의 건축물 중 하나인 정전에 대해서만 자꾸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주제를 바꿔서 종묘에 있는 다른 건축에 대해 써본다. 바로 왕세자와 단종하신 왕을 모신 영녕전이다. 종묘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전만 찾지만 영녕전은 정전과는 다른 기품이 있다. 16방의 왕세자와 왕이 모셔진 공간에서 느끼는 엄숙함은 잊히지 않겠다는 의지 같다. 혹은 왕만이 기억되지 않도록 하는 왕조의 배려처럼 느껴지는 이곳 영녕전은 또 다른 멋이었다. 정진을 지나가 그 뒤에 소박하게 놓여있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공간. 그러나 나는 그 뒤로 몇 번의 종묘를 갔을 때 정전보다는 영녕전에 더 발길을 돌렸다.

MC4xMTk0MDUwMCAxNzE0MDA5MTAz.jpeg 종묘제례악 - 해양레저신문 출처

왕조의 기틀을 담아 조선의 역사를 만든 왕들이 모셔진 정전과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짧은 운명 혹은 여러 복잡한 사연에 얽힌 개인적인 서사가 이끌려서일까? 무엇이 되었던 영녕전은 분명히 정전과는 다르면서도 고귀한 의미를 지닌 곳이기에 종묘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영녕전은 나에게 있어 종묘에서 큰 시간을 보낼만큼 애틋하다. 또한 아름다운 공간으로서 나에게 여겨진다. 그러나 현재의 종묘는 정전의 수리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종묘 정전이 모두 수리가 끝나고 그들의 신주와 위패가 돌아오는 그날 나는 다시 종묘를 찾고 싶다. 그들의 기품을 찾고, 왕조의 가치를 느끼며, 건축의 미를 기억하고 싶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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