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셰임을 보게 되었다. 왓챠에서 내려간다길래 급하게 보게 되었다. 보고 나서 느끼게 된 허무한 감정이 바닷바람처럼 온몸을 가득 적셔버렸다. 동시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을 때 느꼈던 부끄러운 요조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마주 한 것 같았다.
영화는 관계를 맺기를 어려워하는 남자를 다루고 있다. 관계에는 미숙하지만 욕망에는 집착한다. 그는 욕망을 쫓아 자위와 콜걸 그리고 원나잇 등으로 자기 욕망을 채워나간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그는 누구에게 친절해 보인다. 그는 이미 성공해서 직장의 높은 위치에 올라왔다. 뉴욕에서 자기 집이 있는 성공한 여피족이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이미 말한 듯이 더럽고 스스로가 숨기고 싶을 정도로 지저분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인생에 완벽이라는 표면적인 삶과 부끄러움이라는 숨겨진 경계를 반복적으로 교차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하나뿐인 여동생이 찾아온다. 그녀는 그와 다르게 관계에 대한 집착과 불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녀는 관계에 실패를 맺을 때마다 죽음을 시도한다. 그리고 다시 책임 없는 삶을 살아가기 바쁘다. 그런 그녀가 하나뿐인 오빠에게 찾아갔다. 오빠를 마주해도 그녀의 불안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오빠에게서 상처 받을 것을 알지만 하나뿐인 그녀의 오빠 브래든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매우 이질적인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한 명은 관계를 거부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관계에 집착한다. 하지만 둘의 공통점은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상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믿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맺게 될 관계에는 다가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홀로 남기를 바란다. 그러나 인간이 관계를 거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가족인 씨씨로부터 보고 싶지 않은 관계의 흐름을 마주한다. 결국 그도 우연히 찾아온 관계를 지속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택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이 맺고자 하는 지속된 관계는 불가능이라도 한 것처럼 포기하고 욕망으로 돌변한다. 성욕이라는 지점을 돌입하면서 관계는 실패한다.
동생은 또 다른 관계를 맺게 된 자기 보스로부터의 외면에 지쳐가며 위로를 요청한다. 브래든도 그의 동생 씨씨도 서로의 관계에 외면받은 문제를 어찌할 줄 모른다. 자신이 느껴야 할 감정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며 그는 짐승처럼 욕망을 쫓아다니기만 한다. 그렇게 위선적인 나와 본능적인 나 사이에서 다시 상처 받은 주인공이 찾은 것은 황량한 바다와 자신의 동생 씨씨의 병실이었다.
둘은 다시 또 관계에 어색해하며 끝내 극단 성으로 치닫는 현대인의 말 못 하는 응어리진 감정에 해소가 지난 후에 부끄러움을 성찰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부끄러움은 현대에 나 같은 사람들의 부끄러운 감정으로 동일시하게 만든다. 영화 셰임은 뉴욕이라는 한복판을 넘어서 현대사회에서 만나거나 결혼 관계 사이에서 느끼게 되는 불안감과 관계 속에서 나타나기도 하는 위선을 고백한다. 창피함이라는 뜻을 가진 영화 제목답게 모든 것이 현대사회에서 혹은 사회 전반에 깔린 부끄러운 행각에 대한 비난 한다.
또 한편으로 영화 속에서 부끄러운 욕망의 행위 혹은 가학적 충돌의 형상 너머를 드려다 보게 만든다. 바로 현대사회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말이다.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여러 방법을 이용해서 관계를 이어가도록 만든다. 오히려 너무 많아진 관계에 힘들어한다. 그들을 모두 컨트롤하기 지쳐가고 관계를 위해 사용한 페르소나는 부족하다. 결국 현대사회에서 관계를 포기하고 자신을 숨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표면적인 모습은 평범하지만 내면의 나의 모습은 부끄러움 그 자체이다.
영화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현대의 관계로 만들어진 시대에 자신을 감추고 있으면서도 고독하다. 모든 것에 지쳐버린 불안감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이 느낄 표면적인 관계의 삭막함과 변해버린 시대의 부끄러운 문제를 지적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과 별개로 누군가에게로부터 얻는 관계조차도 위선적인 가면을 쓰고 다닌다. 결국 사회에서 누구와도 관계 맺기를 두려워 하지만 이방인처럼 홀로 살아가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욕망을 통해 드러낸 나 자신을 혐오하면서 외로운 공허에 지치기를 반복한다.
점수 : 4.5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