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크리스토스 니코우
영화 애플은 그리스의 영화감독이 그려낸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마치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비슷한 성향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란티모스만의 끝도 없는 상상력과 다르다. 기묘한 현실에서 드러나는 환멸스러운 세상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다만 세상의 환멸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거기에 상상력과 코미디를 집어넣었다.
영화 애플은 갑자기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린 남자를 주인공으로 이야기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개연성에 맞춰 주인공에게 사건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게 우선이다. 체호프가 말했듯이 1장에서 권총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억이 모두 지워졌다. 의사는 전염병에 걸려서 상실증에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 대신에 그냥 걸렸다는 결정만 보여준다.
그로 인해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주인공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는 사라졌다. 관객들은 지금의 현재의 주인공에게 의지한 채 스토리를 따라가야 했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결국 기억을 찾지 못했고, 남자의 세계는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져야 했다. 관객들도 그런 남자의 예전 기억 대신 남자가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추억과 현실의 삶을 다큐처럼 받아들인다. 이것을 다큐라고 하기에는 어색해 보인다. 그래도 남자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방식을 따른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모두 정신과 의사가 내주는 숙제를 진행하고 사진을 찍으며 그들에게 순종한다. 그것이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고 믿으며 말이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가며 자신의 삶에 기록될 기억을 담아 앨범에 보관한다. 하지만 그의 행동들이 새로운 삶에 적응하거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위적인 형태의 기억이 앨범에 쌓여있을 뿐이다. 더 이상 남자가 느꼈던 행복도 누군가와의 공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는 흘러간 시간과 그들이 행동하라는 방식에 맞춰 살아갔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코스별로 살았지만 쌓여있는 사진밖에 없다. 점차 새로운 삶을 위핸 의지는 사라졌다. 오히려 그들이 주는 미션에 의지해서 세상을 살아간다.
자신의 추억이 아니라 남들과 같은 미션의 증거품으로 남는다. 결국 자신의 삶의 기억과 추억은 공유되지 않는다. 남자의 삶은 형식일 뿐 그 이상으로 느끼는 것은 없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의 삶과 비슷해 보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기억을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의 명령과 지시를 통해 만들어진 기억을 붙들며 삶을 살아간다. 특별했던 추억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믿으며 스스로 잊어버린다. 현대는 그렇게 퇴화되었다. 남들과 똑같이 사진을 찍고 앨범을 채워간다. 점차 세상에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공감은 단절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모든 것에 공감하며, 의미를 찾는 기억을 중요시 여기지 않게 되었다. SNS는 매일 수 만장의 사진과 기록이 올라온다. 하지만 정작 올라오는 기억은 남들이 부럽거나 이목을 끌만한 것들 뿐이다. 하지만 정작 남들에게 보여지 않는 기억은 스스로 망각한다. 나라는 존재를 인위적인 형태로 부각했다. 삶의 형태가 남들에게 맞춰지도록 만든다. 앨범에 꽂히는 수많은 사진들을 의사들이 점검하듯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기억하는 것보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이 편해진다.
그래서 망각은 병이 아니라 당연한 현상으로 치부된다. 내가 느끼고 싶지 않을 때 모든 걸 잊는다.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온라인 상으로 나를 망각시키고 투영했다. 내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억에 숨기고 남에게 형태를 구걸하며 사는 것에 익숙함을 느낀다. 과연 그것이 옳은 현실일까 자문도 하지만 정신과 의사 말대로 기억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삶에 복종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영화는 그런 인생과 현대사회를 탈주하려는 주인공의 의지를 만들었다. 자신이 망각했던 기억을 상기시키고 자신을 직면하게 만든다. 새로운 삶이라고 하지만 기억을 잃은 사람들과 똑같은 인위적인 기억을 가지며 살아가는 인생을 포기한다. 기억이 지워진 채 살게된 새로운 삶은 편할지도 모른다. 의사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그것이 내 삶이라고 믿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점차 내가 느끼기에 현신을 버겁다. 새로운삶이 오히려 나에게 피로할 뿐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기억을 다시 되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직면하기를 거부해서 망각했던 세상을 다시 돌아본다. 물론 그의 기억을 망각했던 것보다 다시 되찾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되찾은 기억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으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결말을 통해 주인공의 모습이 아름답거나 희망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이러한 현실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오히려 어떤 것이 더 좋았을지 모를 정도다. 오히려 직면한 현실이 더 비정상처럼 보일 때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주인공 알리스는 끝내 사과의 맛을 다시 기억했다.
점수 : 3.5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