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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Oct 04. 2021

농담으로 씌여진 가난

영화 모던타임즈 by. 찰리 채플린

모던 타임즈 (1936)

찰리 채플린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광대분장처럼 한 얼굴, 특이한 콧수염, 검은 중절모, 지팡이와 양복을 입은 가난하고, 약간은 부족해보이는 모습 말이다. 그래서 그의 이미지는 주로 코미디영화에서 사용된다. 항상 실수로 인해 벌이는 슬랩스틱은 영화 내내 관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하지만 그의 코미디에 서려있는 슬픈 내막은 영화를 모두 보고났을 때 우리에게 씁쓸히 밀려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찰리 채플린이 남긴 웃음이 사라지고 다시 비극적인 현실로 돌아간다. 


영화 모던타임즈도 마찬가지다. 그런 시대상을 겪었던 이들에 대한 무력한 현실과 슬픔을 채플린만의 방식으로 보인다. 특히나 20년대 노동자가 기계의 부속품처럼 쓰였고, 쉽게 버려졌던 노동자를 대변했다. 경영자들의 끊임없는 압박에 굴복하여 살아남기 위해 일을 했다. 그러다가 대공황이 찾아오고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렇게 노동자는 다시 가난속에 내몰렸다. 그러나 그들이 분노를 표출하면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가난을 극복하고, 일자리를 달라는 요청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라며 탄압했다. 


그러나 경영자와 부유층은 가난을 다른 관점이라며 무시한다. 정치적인 관점을 피하고, 핑계와 변명 혹은 질책으로 일관한다. 가난은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거나 남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남발한다. 결국 기계장치로 쓰이다가 버려지는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지 않는다. 자신은 그런 삶을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렇기에 가난은 항상 어렵게만 느껴진다. 


찰리 채플린은 누구에게도 쉽게 공감받을 수 없고, 자칫하면 공산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위험한 시대에 가난을 풍자했다. 그에게는 별로 상관없을 수 있다. 그저 코미디언인 자신이 코미디영화에만 몰두해서 많은 사람을 웃기면 그만이다. 재미만을 추구하는 관객들을 위해 광대로 남으면 되었다. 밑바닥 하류층들에게 눈을 돌리지 않아도 충분했다. 하지만 찰리 채플린의 선택은 가난한 자들의 모습을 비유하며 현실을 비꼬았다. 재미난 장난과 실수로 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한낱 코미디로 보일 것이다. 


기계처럼 일하기 위해서 쉬는 시간도, 점심시간도 뺏고 싶은 경영자의 흉악한 모습들도 하나같이 웃기기만하다. 기계부품처럼 기계 속에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코미디장면 중에 하나다. 뿐만 아니라 감옥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 농담이 영화에 스며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위협적인 농담을 찰리 채플린은 당당하게 내뱉는다. 그가 공산주의자라서 이런 영화를 감독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찰리채플린은 공산주의자가 아닌 가난한 자들에 대한 현실을 알리고 싶어 했다. 스스로가 굶주린 삶을 살아오면서 가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가난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인지 모던 타임즈는 노동자에 대한 인권이나 기계 부품처럼 일하는 노동자의 현실과 더불어 사회적 문제를 농담으로 씌어버렸다. 오래된 영화이기에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영화 속에 농담은 여전히 현대사회에도 유효하다. 주장한 메시지가 영화 속에 박혀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도 모던 타임즈는 영원하다. 기계부품처럼 노동하는 현실은 멈추지 않았다. 일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실업상태가 된다면 인간처럼 대우받지 못한다. 그보다 더 깊숙이 이야기 한다면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은 반복된다. 


결국 실업상태가 되지 않고자 아등바등 기계장치 속에 들어가서 근로기간을 연장한다. 꾸역꾸역 버텨내서 얻어낸 돈은 다시 소비되어 돈을 위해 노동자로 돌아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고전으로 불리는 영화 속 삶과 다른 것이 없다. 그저 영화는 재미있게 보고나왔지만 이미 현실을 영화 속에 장면들과 겹쳐졌고 지금까지 겹쳐있다. 


그만큼 찰리 채플린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웃겨 보이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것에 강한 충격을 남겨준다. 모던 타임즈는 아마도 더 먼 미래에 매우 오래된 고전 미디어물로 남겠지만 그 시대가 변하지 않았다면 웃음을 걷어내고 나타난 현실을 보여줄 것이다. 찰리 채플린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난을 이야기 했다. 그렇게 변할 줄 알았겠지만 그의 코미디만은 고전이 되었고, 가난은 현대에도 씌여졌다. 그리고 농담은 지속되었다. 


점수 : 4.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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