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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Oct 14. 2021

신화 속의 숨겨진 대통령
'링컨'

링컨 by. 스티븐 스필버그

링컨 (2013)


미국의 9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도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의 생애와 업적과 미국의 전환이 되는 역사의 사실들을 본다면 역사속에 남겨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을 개척했다. 독립을 이루어 새로운 나라 미국을 건립했다. 그리고 건국의 아버지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링컨의 역사는 마치 건국의 신화의 완성형이었다. 거대하고 위대한 역사를 건립했던 대통령 링컨은 역사이자 신화였다. 다만 신화 속의 인물처럼 모든 것을 초월한 영웅은 아니었다. 그는 개인적인 인간으로서 본다면 무력했다. 의회의 방해로 헌법도 바꿀 수 없었다. 대통령의 직위로 전쟁을 멈추지 못했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그와 관련된 인물의 기록과 증언 등을 종체적으로 집약한다. 그만큼 역사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에 모든 것이 정확해야 한다. 또한 모든 증거품 혹은 사건의 진술을 통해 증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신화는 역사와 달리 사실적인 이야기보다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노래와 시로 전승되었다. 실제 역사는 아니지만 시대를 남기려는 선조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만큼 링컨의 모습은 역사적인 인물이면서도 신화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역사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미국 대통령과 남북전쟁의 시기 속에서 미국을 이끌었고, 미국을 통일시켰다. 동시에 남북이 분열된 미국을 다시 연방으로 그리고 하나의 나라로서 토대를 만들고자 노력한 신화적인 존재였다고 평가 할 수 있다.  

  

다만 영화 링컨은 역사적인 그의 기록과 신화적인 그의 모습에 덧붙여 초라했던 개인의 삶을 첨가한다. 동시에 그의 삶을 관찰하면서 링컨이라는 존재를 드러낸다. 역사적 사실로 본다면 링컨의 대통령의 업적과 내전 시대에도 미국을 지키고자했던 굳건한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신화로서 링컨은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선택과 신념을 지켜낸 영웅이었다. 하지만 개인으로서 링컨은 항상 무력하고 나약했다. 이런 인간적인 형태와 불안한 링컨을 보면서 우리는 링컨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감독의 선택 적중한 결과였다. 결국 링컨을 신화에서 탈피시키고, 역사를 보이지 않던 과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개인으로 항상 숨겨졌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완성시킨다. 


다만 개인적인 링컨을 영화 전면에 내세울 때 부담도 있었다. 역사에 가장 위대하고, 신화적인 대통령을 인간으로 끌어 내린다는 점은 위험한 도박과 같다. 관객들이 감독을 비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연출을 이용했고, 배우를 담아내어 자기만의 링컨을 만들었다. 그렇기에 관객은 인간으로서 링컨을 바라봤다. 그리고 우리는 남부전쟁과 흑인노예제도의 폐지등을 더욱 뚜렷하게 이입하였다.  특히나 영화는 남북전쟁의 휴전 협정을 문서로만 읽고 단락의 일부로 파악할 수 있던 장면까지도 우리에게 스며들게 만든다. 남북전쟁 시기에 휴전을 앞두고 있었던 순간에 링컨은 전쟁을 멈추지 않는다. 그가 신념으로 진행해온 노예해방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부와의 협상을 진행한다면 그는 더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 미국의 분열을 멈추고 좀 더 편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의회에게도 좋은 조건으로 그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전쟁을 수습하고 하나의 미국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역사의 결과처럼 휴전을 거부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링컨이 걸어온 길을 역사가 아닌 개인으로서 같이 동행해 나간다. 링컨을 지지하는 시민으로서, 흑인 병사로서, 노예에서 벗어난 인간으로서 말이다.  역사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본다면 누구나 지루했을 것이다. 무미건조한 문서와 기록은 우리를 그 시대에 일부로 이끌지 않는다. 오히려 시대의 맥락을 무미건조하게 암기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형태의 링컨이 고뇌하고, 도덕적인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대통령으로서 결정했을 때 우리는 역사를 느꼈다. 링컨의 슬픈 표정을 볼 때마다 관객은 신화를 습득하였다. 


그렇게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는 역사 속에서의 링컨과 신화가 된 링컨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지 노예를 해방했기에 역사가 된 것이 아니다. 그가 짊어진 정치적 무게와 도덕적 무게를 바탕으로 삶을 이겨나갔던 링컨이기에 역사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의 결과는 그를 신화로서 탄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개인 링컨이 시작한 것이기에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영화는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링컨의 존재가 왜 그렇게 추앙받고 위대한 신화로서 개척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싶기에 그려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링컨 대통령하면 떠오르는 위인전 인물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지닌 무게에 고뇌하고 번뇌하던 링컨을 통해 링컨을 위해 링컨을 위한 영화였기에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의 의미를 깨닫게 만들었다.  


점수 : 4.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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