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차 대전이라는 최악의 전쟁을 몸으로 겪었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자리에 남겨진 이들에게 전쟁은 참혹했다. 하지만 유럽은 1차 대전의 흘린 피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각 나라는 혼란스러웠고 복잡한 셈법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무너진 정권 아래 욕망을 드러내며 각자만의 방법으로 권력을 쥔 사내들이 나타났다.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그리고 스페인의 프랑코였다. 군대를 이용했고, 정치적으로 억압적인 독재를 통해 나라를 마음껏 이끌었다. 파시스트를 국가사회주의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지키는데 집착했다.
그중에서 프랑코는 스페인에서 쿠데타를 저질렀다. 훗날 스페인 내전이라고 불리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는 끝내 승리하였고 권력을 차지했다. 그들과 척을 진 공화파는 스페인을 떠나 도망쳤다.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이념을 지닌 프랑스에서도 그들은 좋지 않은 존재였다.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으로 수용소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용소에는 한 명의 화가도 붙잡혔다. 그가 바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인 조셉이었다. 애니메이션은 화가인 조셉의 그림을 시선으로 바탕으로 수용소의 기록을 풀어나간다. 가혹했던 수용소 생활과 고통스러운 나날이 반복했던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수용소에 갇힌 혹은 탄압과 고통받는 작품의 애니메이션은 많은 작품이 우리 앞에 개봉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세계 2차 대전을 실제로 겪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실제로 남겨진 그림의 역사이기도 했다. 보통 이런 애니메이션은 대체로 역사적인 사실에만 치중하면서 본연의 재미를 잃어버릴 때가 많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조셉 포로수용소는 충실히 자신이 겪었던 역사를 풀어냈다. 동시에 자신을 그림 속에 남겨진 기억을 관객들에게 전달하여서 그때의 감정과 행동을 이중적으로 보여준다.
보통의 애니메이션이 해오듯이 일반적인 그림의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이야기를 보는 관객은 이야기가 실제 사건이고, 종이 위에 그려진 스케치가 또 다른 허구의 상상처럼 느껴진다. 분명히 조셉이라는 캐릭터는 그림으로 그려진 인물이다. 실제 일러스트 모델이 있지만 조셉은 엄연히 그림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셉을 그림이 아닌 현실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감정을 공유한다. 대신 포로수용소에서의 고통과 아려한 순간 그리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그림 속에서 추출하여 수용소를 바라본다.
다만 애니메이션은 이 점이 전부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만든다. 조셉이 그려낸 스케치 속에 이질적인 수용소로 장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점차 갈수록 실제 역사를 담아내는 비중이 많아지고 실제 그림의 역사가 남겨지는 과정이 공백을 채우면서 조셉은 수용소에서 실존하는 인물에서 자서전의 주인공으로 변한다. 바로 2차 대전의 산 증인이자, 공화주의자였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조셉 바르톨리 말이다.
애니메이션이 갈수록 그런 자서전적인 색깔로 빠져든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했다. 실제 인물이었으며, 수용소에만 갇혀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수용소를 나온 순간부터 관객은 조셉과의 연결이 끊어진다. 그림 속에 그려진 수용소의 세계는 바깥으로 벗어난다. 대신에 조셉이라는 외적 존재를 바라본다. 실존하는 인물로서 그의 삶과 그림이 출판되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미술관에 기념되기까지의 혼란한 시기의 남자를 조명하는 것으로 구조화된다.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과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적인 경계를 혼합한 작품이기에 나름 좋은 결과물이 되었던 점을 사실이다. 다만 과연 이 작품의 경계성을 단호하게 잘라낸 점은 아쉬울 뿐이다. 수용소를 나온 직후의 조셉은 그저 외부의 인물로서 변해버렸다. 만약 수용소를 나와도 조셉의 그림들로 조셉의 세계를 공유했다면 우리는 좀 더 조셉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감독이 10년간 매진한 결과물이었으며 좋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감독의 다음 작품에는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접근 해 오기를 바랄 뿐이다.
점수 : 3.5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