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듀얼 by. 리들리 스콧
중세시대를 떠올리면 많은 이들은 화려한 옷과 아름다운 건물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판타지 세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꾸며진 중세 말이다. 하지만 진짜 중세는 그런 세상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전쟁으로 지속되는 피폐된 삶과 끊이지 않는 전염병에 시달리며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귀족이라고 다를 것은 아니었다. 중세시대는 화려한 삶을 살아가기에는 여력이 되지 않았다.
이런 중세시대를 살아간 것은 그나마 남자의 역할이었다. 여자는 남편의 소유물이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결혼은 아이를 낳아 대를 잇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에 갇혀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다. 언제나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침묵했다. 현대에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을 관습이다. 하지만 중세는 그러한 역사적 관습을 대물림 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영화 라스트 듀얼은 중세의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시대와 관습 그리고 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두 귀족의 결투를 앞두고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분위기로 시작한다. 둘은 누구이며 한 여인은 왜 긴장하고 있는지 아직 모른다. 다만 서로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품은 듯이 노려보는 자태는 강렬하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그들이 왜 결투까지 벌이게 되었는지를 각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바로 승자와 패자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자의 입을 통해 말이다. 그리고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극 중에서 장이라는 이름의 기사부터였다.
전쟁터를 같이 누비던 친구 자크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우정을 쌓았는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점차 새로운 영주의 취임으로 벌어져가는 두 사람의 관계는 복잡한 감정으로 메워간다. 결국 장이 잠시 떠난 성에 침입한다. 그리고 장의 아내를 강제로 범하면서 서로를 더 이상 친구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렇게 벌어지게 된 전투를 앞두고 다음은 자크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자크의 입장 또한 비슷했다. 친구였지만 영주의 계약과 점차 벌어지는 귀족 간의 신분 재산의 갈등이 그들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다. 다만 장의 아내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자크의 대답에는 이기적인 태도만이 남겨져 있다. 아무도 그녀를 위해 나서 주지 않았다. 장은 친구였지만 원수인 자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결투를 벌였다. 자크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장의 결투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자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의 운명은 대답해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장의 아내이자 아무것도 아닌 마르그리트의 증언을 끝으로 결투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녀의 진실이은 그녀의 입으로부터 나온 발언과 별개였다. 신에게 선택받은 이가 곧 진실된 자였기에 둘의 결투는 언어로 표현된 진실이 배제되었고, 오로지 복수와 명예만이 남겨진 대결이었다. 결국 그녀는 대답했지만 희미하게 사라진다. 그렇게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고 아무것도 아닌 자는 다시 침묵했다.
우리는 항상 중세시대였으니까 라는 사실적인 역사에만 초점을 맞춘다. 여성의 인권은 보장되지 않았던 과거를 경계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스트 듀얼은 그런 시대에도 침묵하지 않는 진실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의 죽음마저 각오하고 대결을 했던 두 남자의 결투 이전에는 진실이 있었다. 앞전에 수많은 여자들이 사실을 숨기고 삶을 보존하기 위해 버텨왔던 숨겨진 진실들을 그녀가 끄집어낸다. 역사로 보면 단지 그녀 혼자의 사건에 대한 진실 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시작했다.
결국 중세시대의 진실은 결투를 통한 비이성적인 결과로 끝이 난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자는 진실에 대한 대가를 부여받지 못했다. 하지만 진실이 현재를 이끌어온 일부였다는 점을 확실하다. 분명히 불필요하다고 느끼거나 그저 무리한 결과처럼 보일지라도 그런 과정이 시대를 거쳐갈 때마다 세상을 달라지게 만든다. 다만 진실이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실을 통해 바뀌는 시대를 잊지 말아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라스트 듀얼은 승자와 패자가 정해진 결투이면서도 진실이 숨겨진 마지막 결투였다.
점수 : 3.5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