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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Jan 12. 2022

극장에서 본 501번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by.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카 (2021)


극장에서 500번째도 아닌 501번째 영화를 보고 나왔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를 본 순간을 기억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방식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숫자를 세본다. 그리고 나의 501번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는 가장 특별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의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는 언어와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며 타인과 소통한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인간은 언어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음성이 아닌 시각적인 형태 혹은 촉각적인 표현을 이용한다. 언어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의 도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서로 간의 소통이 원활하다고 할 수 없다. 같은 나라의 언어가 아닐 경우에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소통을 위해 번역을 한다. 서로의 언어로 의미를 해석해서 소통한다. 

  

그러나 언어가 같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서로 간의 대화가 단절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상황과 감정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간극이 벌어지면서 서로와의 관계가 소홀해진다. 결국 언어로서 대답하지만, 관계를 위한 소통은 끊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제는 서로 간의 갈등을 일으킨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언어적으로는 분명히 대화라는 것을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평범하게 건넨 대화도 감정이 섞이거나 편견이 드러나면 소통은 단절된다. 두 사람은 상황과 방식을 트집 잡고 서로를 공격한다. 대화를 위한 언어구조는 무시되고, 감정을 표현하는 감정만이 드러난다. 메아리치듯 반복되며 상황은 악화된다. 이런 상황에 질려버린 한쪽이 상황을 종료해야 멈춘다. 혹은 서로 간의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감정이 없는 형식적인 대화가 지속하면서 소통은 사라진다. 그래도 나는 대화는 했다는 자기 위안을 삼으며 상황을 반복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는다. 물론 상처받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처를 이겨가며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하지만 상처받은 인간은 다른 관계와 언어적 소통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게 할 수 있다. 영화는 인간의 치유의 방식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물론 언어라는 것을 사용한다고 상처를 모두 치유할 수 없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포기하기 않고 다양하게 쓰이는 언어를 받아 들어야 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는 그런 인간의 다양한 언어를 체호프의 연극 바냐 아저씨에서 드러낸다. 타자의 언어를 통해 연극은 진도가 진행되지 않는다. 분명히 문자로 작성된 대본이 있지만 모두가 이해하지는 못한다. 타국의 언어로 대사를 읽기에 어렵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배우들의 언어는 어느새 관계를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로 변한다.  동시에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면서 연극은 관객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냐 아저씨를 통해 형식적인 언어가 의미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이런 형식적인 영화를 만들어가기에 나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대화와 소통 그리고 언어를 중요시하게 여기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간에게 언어는 절대적이지는 않다. 소통의 방식에는 언어 외에도 다양하다. 그러나 감독이 이전에 보여준 영화 해피아워, 아사코, 우연과 상상 같은 작품에서도 언어를 사용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어는 상황에 따라 갈등을 봉합하거나 문제를 만들었다. 언어 외적인 형태도 있지만 결국 인간은 언어로서 모든 것이 이어지고, 이끌어졌고, 만들어졌다. 

  

인간이 상처받아서 느끼는 표현을 언어라는 장치로 드러냈다.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봐 못한 표현을 체호프의 희곡을 통해 언어로 내비친다.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는 언어로 연결된다. 갈등의 봉합이나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는 다른 방식도 많았다. 그렇지만 언어는 다른 상황에서도 갈등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억지스러운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무대에서 보여준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확신했다. 언어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는 삶의 굴레를 거쳐가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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