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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Sep 02. 2020

이별 후에 필요한 것

두 사람 분의 애도

*’데이먼스 이어 - Auburn​’을 들으며 읽는 것을 권합니다.




당신에게 이별이란 무엇인가.


이별은 우리가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이별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 말을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잠시 떨어져 있는 것. 잠시. 나는 이별에 있어서 그가 사용한, ‘잠시’라는 단어를 이해하려고 그 자리에 앉아서 홀로 열심히 애써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이별은 죽음이다. 추억할 수는 있지만 이제 영원히 그 사람을 볼 수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살결을 만질 수도 없다. 이럴 수도 있었고 그럴 수도 있었던 모든 가능성, 때로는 두렵기도 했고 때로는 설레기도 했던 그 모든 가능성들에 종말을 고하고서. 그 시절의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넜다. 나는 그 사람의 시체에 얼굴을 비비며 슬퍼하다가, 결국 무덤에 묻어야 했다.




죽음에는 애도가 따른다. 따라서 이별을 겪은 이는 그 사람의 시체를 염하고 장례를 치르고 안녕을 고하며, 애도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은 큰 고통이다. 금방 괜찮아질 필요도 힘을 낼 필요도 없다.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가지지 않은 이는 언젠가 다시 그 상처가 곪아 터지기 마련이다.


다만 애도의 기간에는 그 상처와 고통이 아물 때까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인생의 주어를 ‘우리’에서 ‘나’로 다시 바꿔가는 과정.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살면서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런 것들에 한동안 골몰했다.


감정은 시시각각 변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어느 날은 괜찮았다가 어느 날은 괜찮지 않기 마련이다. 어느 날은 용서하고 어느 날은 용서를 바라고 어느 날은 용서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지나간다.


이때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죽은 사람을 붙잡고 흔들어봤자 상처 입는 것은 나뿐이.  사람과 관련된 것들은 죽은 자의 것이니, 같이 무덤에 묻어야 한다. 죽음이 삶을 괴롭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타인의 위로는 도움이 된다. 내가 믿는 타인들이 나에게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정말 괜찮다고 괜찮을 것이라고 믿어봐도 좋다. 그때의  그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죽음의 상주다. 상주가 손님들에게 항상 의지하고 기댈 수는 없다. 그들은 잠시 내 장례식에 와준 것일 뿐, 그들의 삶에도 그들 몫의 힘듦과 문제가 있다. 나의 상실과 슬픔을 함께 애도하러 와주는 소중한 타인들을 홀대하면 안 된다.


나는  슬픔의 주인이다. 타인의 위로가 지나가고 나면 결국 다시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것은  자신이다. .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157쪽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 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을 잊지 않고  애도해야 한다.  사람이 죽으며 뿌리 뽑혀 나간  일부분도 함께 애도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이별 후엔 두 사람 분의 애도가 필요하다. 지금 나는, 그때의 어린 에게도, 참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그때의 너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차피 모든 사랑은 이별로 끝난다. 모든 사람은 죽음으로 나는 것처럼.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용기 있는 행위다. 나는 죽음을 겪었다고 해서 사랑하는 능력을 잃지는 않을 이라고 다짐. 영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 나온 대사처럼, 우리는 과거는 바꿀  없다. 과거로부터 배울 뿐이다. 


이 글의 모든 ‘나’는
‘너(당신)’로 바꿀 수 있다.


‘나’를 ‘너’로 읽을 수 있는 당신이라면,

그러니까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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