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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Dec 31. 2020

다들 잘도 사는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들, 잘도 사는구나.


저녁부터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붙잡고 늦은 새벽까지 시간을 버리며, 분명 처음에는 무언가를 솔직하게 내뱉고 싶어 들어갔던 SNS에서는 여기저기 전시된 다른 사람들 이야기만 괜히 흘끔 대다가- 이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고서 혹은 잊어버린 척을 하고서 다시 달팽이처럼 자세를 고쳐 돌아 눕는 그때.

내 등을 뜨겁게 달구는 것이 전기장판인지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헷갈렸다.




다들 참 잘도 산다.

누군가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누군가가 직접 요리해 준 음식을 먹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춤을 추고, 걷고, 달리고, 운동을 하고, 밑줄 치며 책도 읽고, 필사하고,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감탄하고, 꾸미고, 물건을 사고, 선물을 받고, 취미로 만든 물건을 자랑하고, 멋있는 풍경을 보고, 귀여운 반려동물과 놀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축하하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일을 하고, 일을 참 열심히 하고-

어쩌면 저렇게 잘도 살아갈까.

다른 사람들의 삶이 내뿜는 강렬한 빛에, 내 삶 뒤로 길고 긴 그림자가 지는, 그런 날이 있다.


이런 자신의 상태를 비웃는 제3의 나는 유령처럼 천장을 떠돌고, 나는 곧 지난 결정들을 후회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특별하다는 말은 내겐 누구나 평범하다는 말이나 다름없었고, 나는 내 삶의 특별함과 아마도 딱 그만큼의 평범함에 몸을 떨었다.


이상하다. 내 발에는 도대체 무엇이 묶여 있기에, 발버둥을 멈추면 이렇게 간단히 수면 아래로, 깊고 어두운 저 밑으로 가라앉는가.




그래, 가라앉는다.

그렇게 가라앉을 때에는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것보다, 그저 이렇게, 나의 생각과 감정을 선명히 들여다보며, 그것들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해 본다.


수면 아래서 괴물 같은 감정들이 나온다.


그러나  이야기하다 보면,   커다란 괴물 뒤에 정말  살고 싶었던 내가 웅크리고 숨어있었음을 발견한다.


그렇게 이 시간이 지나간다. 그러니까 내일, 또 내일, 그리고 오늘.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나는 다시 잘도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할 수 있는 나는, 결국 괜찮을 것임을 안다.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은 날씨 같다. (......)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 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 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2018) 중에서


심연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가진 그 깊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이번에는 경탄하며, 문득 생각한다.


그래, 정말로, 다들, 잘도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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