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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Aug 11. 2020

2020 여름의 빗소리는

#장마 #서울민국 #기후 #환경


오늘 아침 또 비가 내렸다.


평소 나는 날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날씨가 좋거나 싫은 것은 그 날 내 마음에 달린 거니까. 모든 날씨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맑은 날만큼이나 비 오는 날도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의 매력을 하나 꼽자면 역시 빗소리다. 빗방울이 토독- 토도독- 다양한 사물을 두드리는 소리가 좋다. 조금 거칠게 퍼붓는 빗소리도, 시원해서 참 좋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 여름은 빗소리가 반갑지 않다. 작년에는 비가 너무 오지 않아서 그리웠던 소리인데, 2020년 여름의 빗소리는 왠지 자꾸만 마음속에서 무언가 불편한 지점을 두드린다.


쏟아지는 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아아 위대한 서-울민국,

미디어로 보이는 지역 간 격차,

지구온난화, 이상기후, 환경 문제,

그 모든 불편한 지점들 위를

빗방울이 자꾸만 자꾸만

토독- 토도독- 하고

두드리는 것이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오종우, <예술적 상상력: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2019)’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술은 가을비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보는 통창의 카페 안에 있지 않다.(...)
 예술은 거리 청소부가 빗자루를 든 그 길에 있다. 예술은 차가운 바다 위 고깃배에 어부와 함께 있다. 그 곳에서 예술은 현실을 진정으로 만난다. 그럴 때 꿈은 현실감을 띠고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오종우, <예술적 상상력> 중 프롤로그(10쪽)에서


올봄, 지인과 함께, (물론 마스크를 끼고) 걸으면서 왠지 장마가 점점 짧아지는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대화를 비웃듯이, 2020년 장마는 역대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역대 최장 기간'이라는 자막 위로, 범람하는 빗물을 피해서 지붕 위에 올라간 소의 모습이 뉴스에 나온다. 저 소는 운이 좋다. 동물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토독- 토도독-.




창밖을 보니 아침에 내리던 비는 잠시 그친 모양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빗소리가 자꾸만 마음을 두드린다.


그래서 오늘은,

더울 때 조금은 더위를 참고 느껴 본다.

일회용기 대신 텀블러를 쓰고

플라스틱 빨대 하나 안 쓰고

휴지 한 장 덜 쓴다.

개인의 노력에 코웃음치거나

타인의 불행을 유머로 소비하거나

내 삶을 위로하는 도구로

천박하게 사용하기보다는

그저 앞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목소리를 내면 되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본다.


그래서 오늘은,

비 오는 날의 낭만을 얘기하기보다

빗방울이 톡 건드리듯이 짧지만 조금은 불편한 이런 글도 써 본다. 왜냐하면 예술은, 좋은 글은, 가을비 내리는 거리를 내려다보는 통창의 카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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