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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Oct 11. 2020

글 쓰는 거 즐거우세요?


얼마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글을 쓸 때 즐겁냐고 물었다. 내 입에서는 거의 즉시 아니라는 대답이 나왔다.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았던 거 아닌가 싶어서 지금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글을 쓸 때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있냐고 한다면, 딱히 그런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와 함께 놀 때, 가고 싶은 장소에 갈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재밌는 책을 읽을 때, 영화를 볼 때, 폭신한 이불을 덮고 누워서 뒹굴거릴 때 등등 생각만 해도 매우 즐거운 순간과 비교하자면, 글을 쓸 때는 뭐 별로 즐겁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글을 쓰다가 스스로의 생각이나 문장에 감탄해서 자화자찬하며 짜릿함을 느끼는 경우도 (아주 드물게) 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귀찮거나 싫을 때가 더 많고,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괴롭기도 하다. 나는 지금 주말에 글을 쓰고 있는데, 사실 이렇게 방에 틀어박혀서 글을 쓰는 것보다는 나가서 신나게 노는 것이 훨씬 더 재밌고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나는 글을 결코 빨리 쓰는 편이 아니다. 손끝에서 매끄러운 문장이 막힘없이 흘러나오는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는 한 편의 글을 쓸 때에도 여러 번 생각하고, 덧붙이고, 삭제하고, 수정하는 오랜 시간을 거쳐야 한다.


글을 쓸 때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텐데, 딱히 즐겁지 않다고 말하는, 이런 나는 천상 ‘작가’가 아닌 걸까. 그래서 직업 작가가 아닌 선생님을 하고 있는 거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여기서 글을 쓰는가.


먼저, 글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내 것으로 저장하며 쌓아가는 재미가 있다. 신나게 노는 순간의 즐거움은 휘발되어 사라져 버리지만, 글은 사라지지 않는다. 몇 번이고 내가 원할 때마다 꺼내어 볼 수 있다. 내가 그동안 쓴 글들의 목록을 볼 때, 나는 만족감과 행복을 느낀다. 짧고 유한한 삶을 살다가, 죽고 나면 잊혀지는 운명의 인간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한함'이라던지 '영원성', 그리고 '기억되는 것' 등에 이끌리는 것이다. '글'이라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영원함의 꿈을 꾸게 해준다.


다음으로, 글을 쓸 때는 '나'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줄곧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고 있는지 몰랐던 생각들이, 글을 쓰다보면 어느새 흘러나온다. 그렇게 글쓰기를 통해 나를 마주하고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이 풍성해지고 깊어지는 과정이 좋다. 글쓰기는 내가 갈 수 있는지 몰랐던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준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쓸 때의 재미보다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때의 재미가 더 큰 것 같다. 내 글을 누군가가 읽고 무언가 영향을 받을 때, 그 때는 정말 너무너무 기분이 즐겁고 좋다. (그러니까 글을 쓸 때, 이 글을 읽어줄 명확한 독자가 떠오르는 글은 실패할 확률이 적다.) 나 자신을 위해 쓸 때도 물론 즐겁지만, 그것보다는 타인을 위해 글을 쓸 때, 그래서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 때, 즐거운 것이다.


그러고보니, 순간의 쾌락과도 같은 즐거움과, 오랜 만족으로 남는 즐거움을 구분한다면, 글 쓰는 것이 ‘즐겁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론, 그러니까  글들에 라이킷/댓글/공유 많이많이 해주세요.  이게 아니고, , 어쨌든,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오늘도 글 쓰기 싫어서 몸을 베베 꼬며, 결국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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