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Sep 27. 2020

사랑한다, 건강해라.


그녀는 예쁘다는 말에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을 보니 왠지 마음이 안도되었다. 그래서 그녀를 자꾸자꾸 웃게 하고 싶었다.


 “할머니, 진짜로. 할머니가 이 중에서 제일, 제-일로 예쁘다. 알고 있나?”

 “돼-싸, 돼싸!”


농담 30.5%, 진심 69.5% 정도로 내가 던진 말에 그녀는 쑥스러운 듯이 손사래를 치면서도 다시 웃었다. 그것이 좋았다. 그래서 자꾸자꾸 말했다. 알고 있냐고오~ 응? 사실 알지? 아는 거지?


다른 할머니들이 드문드문 떨어져서 나른하게 벽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거나, 가끔 궁금한 듯이 이쪽을 쳐다보시며 눈을 껌벅이시는, 조용한 햇살이 방 안을 채우고 있는 요양원 안에서, 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할머니의 작은 어깨에 기대어 엄마도 눈을 감고 웃었다.




“돼-싸!”는 동해 할머니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강원도 사투리가 담긴 억양으로, 손사래를 치며 돼-싸! 그러니까, 나는 됐다는 말이다.


 -할머니, 이거 드릴까요?

 -돼싸.

 -할머니, 이거 좀 더 드셔 보세요.

 -돼싸, 돼싸.


본인에게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더 드린다고 하면 항상 됐다고 하셨다. 너 해라. 너 먹어라. 나는 됐다. 괜찮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몸에 쌓인 오래된 습관이자 마음 씀씀이일 것이었다.




동해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된 것은 동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018년 가을부터였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돌아온 날에, 요양원에 다시 들어가면서 그곳에 계신 직원분들에게 할머니가 정말로 미안한 듯이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점심 잘 드셨지요? 저만 혼자 맛있는 거 먹고 와서 미안합니다~”


겸손한 사람. 완벽하지 않아도 선한 사람. ‘어떻게든 내가     사는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 가진 것으로 뽐내거나 못 가진 것을 갈구하기보다는 그저 순리에 맞게 주어진 생활을 열심히 살아나가는 사람. 자신이 가진 것 무어 하나라도 나누고 베풀고 주고 싶어 하는 사람. 바로 옆사람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던지는 말이 참 폭신한 사람. 그런 잔잔하고 따뜻한 어른이었다. 그런 어른의 말씀엔 항상 배울 점이 있었다. 그런 어른이 그립다.




“사랑한다, 건강해라이-”


동해 할머니와의 통화는 항상 이 두 마디로 끝이 났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할머니와 전화를 하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이 막히고 눈물이 맺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너무 애쓰지 마라, 너무 애쓰지 마라. 사랑한다, 건강해라. 그런 따뜻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찌나 잘해주시는지. 글을 쓰면서 그 말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애쓰지 마라-’라는 말씀은 어디 써붙이고 다녀야겠다. 어떤 일들은 너무 애쓸 필요 없다고.


사랑한다, 건강해라. 나도 언젠가 그런 인사말로 상대방 마음을 달래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거대한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 정도인 것 같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금 더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오냐 오냐, 괜찮다, 괜찮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