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쌤의 도서편지> 1기를 마치며
시월 한 달간, ‘엑시트’라는 플랫폼에서 진행한 <나비쌤의 도서편지> 프로젝트가 끝났다.
주말엔 그동안의 에너지가 방전되었는지(몸도 안 좋았지만) 그냥 하루 종일 집에서 늦잠 자고, 먹고, 또 자고, 빈둥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매우 나른한 상태라서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힘조차 없다.
한 달간, 일주일에 두 번, 프로젝트에 참여 신청을 해주신 총 10분의 선생님들께 책을 읽고 쓴 편지를 보내며 소통하는 일.
과연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참여하신 분들께 만족을 드릴 수는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던 일인데, 다행히도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반응을 보며 한번 더 해야겠다는 힘을 얻었다.
댓글을 읽다 보면 인간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고민하며 반성하고, 때로는 좌절하고, 한편으론 학생과 자신의 작은 성장에 기뻐하며 또 앞으로 나아가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편지를 읽는 선생님들께 조언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같이 고민하는 한 명의 교사로서 책을 읽고 드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그동안 겪은 경험의 공유를 통해 어떤 힘과 위로를 드리고자 시작했던 것인데, 오히려 내가 더 많은 힘을 얻고 위로를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연대감을 느꼈다.
물론 비록 중간에 학교 일이 너무 바빠지셔서 댓글을 잘 달지 못하신 분도 계시지만, 마지막 설문이나 '함께 쓰는 도서편지' 미션에서 그 마음을 다 알 수 있었다. 사실 편지를 쓰는 한 달 동안, 나 또한 학교에서 새로운 일들에 부딪혔다. ‘교직이 매년 반복적인 직무를 수행’한다는 어떤 연구원의 분석에 나는 진심으로 의문이 든다. 매년도 아니고 매일 새로운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기분인데.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 세상에 ‘선생님’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교사 역할 훈련>이라는 책 제목을 다시 살펴보면, ‘역할’과 ‘훈련’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교사라는 역할은 훈련이 필요하고, ‘훈련’이라는 말처럼 머리로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실천과 반복이 필요하다는 말이겠죠.
그리고 사실, 우리는 매 시간 어떤 학생의 선생님으로만 살아갈 순 없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되고 나서 “선생님이 그래도 돼?”라는 소리를 듣는 일이 잦아졌는데, 그때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 네 선생님 아니야.” 그저 필요할 때 교사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되는 것이겠지요?
교육 현장에서 충분히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계신 선생님. 학생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고생하신 선생님.
오늘은 선생님의 다른 역할을 응원합니다.
-두 번째 편지 중에서 (관련 도서 : 토머스 고든, <교사역할훈련>)
(...) 가끔은 성찰과 반성 말고 자화자찬을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우리가 학생에게 가지는 기대가 학생의 성취의 영향을 미친다면, 반대로 교사가 자기 자신에게 가지는 기대 또한 교사의 성취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나는 유능하고, 좋은 교사다! 나는 잘하고 있다. 나를 만나는 학생들은 참 운이 좋다! 음하하하! 어떤가요?
저는 가끔 ‘교사’라는 것을 게임 캐릭터를 기르는 것처럼 상상해보기도 하는데요, 퀘스트를 깨거나 몬스터를 잡아서 경험치가 일정 정도 쌓이면 레벨업을 하고 새로운 스킬을 터득하기도 하는 게임 캐릭터처럼, 학교 현장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거나 좋은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혹은 일상을 살아나갈 때마다, 어떤 경험치를 얻을 수 있고 이것이 모여서 제가 가진 ‘교사’라는 캐릭터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는 상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열심히 경험치를 쌓다 보면 문제 상황에 좀 더 순발력 있게 교육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내공도 조금씩 쌓이겠지요? 부디 지금의 도서편지 프로젝트도 선생님들께 양질의 경험치를 제공해드리고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다섯 번째 편지 중에서 (관련 도서 : 우리교육, <교실 속 갈등상황 100문 101답>)
(...) 선생님, 우리 서로의 존재를 잊지 말아요. 교사가 되기 전에는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교사와 다른 교사와의 관계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비록 갈등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교육적인 대처’인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경험을 나누며 함께 고민하고, 때로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
-여섯 번째 편지 중에서 (관련 도서 : 우리교육, <교실 속 갈등상황 100문 101답>)
언제나 '의미'란, 나와 나 자신,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별 생각 없이 질렀던 프로젝트에 좋은 의미를 불어넣어 준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경험을 또 해봐도 될까...?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여덟 개의 편지 말미엔 항상 선생님들을 응원했는데, 이 글에선 나 자신을 좀 응원해주고 싶다. 수고했다. 잘했어. 부디 이런 마음이 계속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