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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Nov 08. 2020

바닥을 보면서 복도를 걸었다

그 학기, 실패라고 생각했다.(1/3)


신규 때였는지, 2년 차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일부러 기억이 안 나는 척 이야기하는 걸 수도 있고. 어쨌든 언젠가, 나는 복도를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괴물처럼 보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그땐 정말 학교를
떠나야 하는 것일지도 몰라.






그때, 수업하기 유독 버거운 반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반과는 정말 케미가 안 맞았다. 케미, 쿵짝, 뭐라고 불러도 비슷한 그것이, 그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몇몇 학생들과 잘 맞지 않았다.


사실 케미를 넘어서, 그 반에서는 그냥 ‘선생님’에 대한 반감과 적의마저 가끔 느껴졌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따로 떨어져 있으면 괜찮지만, 모이면 점점 더 이상한 시너지가 나는 학생들이, 우연히 같은 반에 모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반은 담임 선생님과도 잘 안 맞는단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다. 다른 원인들을 더 추측해볼 수도 있겠으나, 지금 와선 정확히 알 수도 없고 소용도 없는 일이다.



1학기 때는 괜찮았다. 그 반 학생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수업도 괜찮았다. 그때는 몇몇 선생님들이 그 반에서 수업하기 힘들다는 말씀을 하셔도, 거기에 대고 ‘전 아닌데요?’라고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잘 공감하지 못했다. 1학년 티를 갓 벗은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참여도 대답도 그나마 곧잘 하는 편이었고, 내겐 마냥 예뻐만 보였다.


그러나 여름 방학이 지나고 2학기가 되었을 때, 내게도 그 반의 공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 분위기는 점점 더 가라앉았고, 질문을 하면 싸늘한 정적만 흘렀다. 같은 정적이라도, 집중을 하며 듣고 있는데 아이들이 전체적으로 약간 소극적인 성격이라 대답을 잘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정적과, 어떤 냉소와 무기력감이 느껴지는 정적은 확연히 다르다.


일부러 더 밝게 수업을 하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더더욱 애를 써야 수업이 조금 수업다워졌다. 그러니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그 반에서 수업을 하고 나면 힘이 쭉 빠져서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반응이 별로 없는 것,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2학기가 되자, 그 반에서 수업을 하고 나면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 날은 문법을 가르치면서 나름 재미있는 예문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 어떤 동물 닮았어?”라고 물었다. 여러 동물의 이름이 나오는 틈에 누군가가 “꽃뱀이요.”라고 대답했다. 몇몇 학생들에게서 와락 웃음이 터졌다. 그 반에서는 그런 식의 여성혐오적 단어를 ‘재미’로 소비하는 일을 자주 보았다.


학생들에게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긴 싫다. 잘 몰라서 별생각 없이 그랬던 것일 테다. 하지만 선생님으로서 그 말을 그냥 농담으로 받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수업을 좀 일찍 마치고 ‘꽃뱀’이라는 단어의 문제점, 그리고 그것을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말한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또, 2학기가 되자 몇몇 학생이 자기 마음대로 자리를 바꿔 앉는 날들이 늘어났다. 그때마다 나는 매번 자기 자리로 가라고 했다. 반에도 규칙이 있다.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다른 학생들도 다 원하는 자리가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 자리를 바꿨던 학생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도 같은 선생님이 매번 그렇게 말하면, 적어도 이 시간에는 안 되는구나 깨닫고 그냥 제 자리에 앉아있을 법도 한데, 다음에 수업이 시작할 땐 똑같은 학생들이 똑같이 자리를 바꿔 앉아 있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변하지 않았던 것인지.


어쨌든 그런 날들이 꽤 자주 반복되었고, 어느 날 또 자리를 바꿔 앉아있길래 아이들에게 원래 자리로 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날은, 한 학생이 뒤돌아 제 자리로 가면서 입모양으로 분명히 ‘씨-발’이라고 하는 것이 보였다. 그 찰나의 입모양과 표정이 내 눈에 박혔다. 넘어갈 수가 없어서 복도에 불러 따로 이야기했다. 대화를 하면서 그 학생은 자신이 욕을 한 걸 인정했다. 곧이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악수까지 했으나, 진심으로 느낀 것이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너무 약하게 지도한 것일까, 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또 어떤 날은 앞줄에 앉은 학생이 수업 시간 내내 수업과는 상관없이 나를 힐끗거리며 계속 킥킥 대길래, 무시할 수가 없어서 왜 자꾸 웃냐고 가볍게 물어봤다. 그 학생은 웃으면서 “양말이 귀여워서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무리가 같이 빵 터졌는데, 결코 기분 좋은 웃음이 아니었다.


물론 “양말이 귀엽다.”는 말은 누가 언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별거 아닌 말이다. 하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그 표정이나 말투, 웃음소리에서 부정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놀림거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건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더 자잘한 일들은 기억나지 않으나, 이와 비슷한 미묘한 태도가 수업 시간마다 느껴졌다.






모두 같은 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일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선생님이지만 그 반에는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른 수업만 하고 나오자. 일단 시작하면 45분은 금방 지나갈 거야. 그나마 담임 반 학생들의 존재, 그리고 다른 반과의 수업으로 버티며 살았다.


“선생님. 사실은요, 저희 반 몇몇 애들이, 선생님을 이상하게 부르면서 욕해요.”


 그 반의 어떤 학생이 교무실에 날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잔뜩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그래? 누가 뭐라고 욕하는데?”라는 질문에 그 학생은 곤란한 표정으로 “그건 말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선생님은 괜찮아. OO이만 수업 잘 들어주면 돼.”


 그 학생은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좋은 의도는 알겠지만, 듣지 않는 것이 더 나은 말이었다. 그때의 나는 사실 괜찮지 않았다.


당시 내게는 학교 업무도 교과서도 모두 새로웠는데, 두 개 학년을 걸치며 4차시 수업을 하니까 한 주마다 8개의 수업을 계속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3학년 담임이라 2학기가 되니 진학 지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 감정 소모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 반뿐만 아니라, 담임 반 그리고 다른 반의 학생들도, 그냥 복도를 지나갈 때 내가 들어가지 않는 반의 학생들도, 지도하게 되는 일이 당연히 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작은 것에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복도를 걸을 때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미지의 존재들이 와글와글 떠들며 우글우글 몰려다니는 복도. 마음속으로 귀를 닫고,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속으로 되뇌면서 바닥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날들이 늘어났다.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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