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학기, 실패라고 생각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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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작은 것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복도를 걸을 때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미지의 존재들이 와글와글 떠들며 우글우글 몰려다니는 복도. 마음속으로 귀를 닫고,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속으로 되뇌면서 바닥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날들이 늘어났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가는 길, 그 어떤 것에도 관계하기 싫었지만 슬프게도 나는 인간이라 투명해질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또다시 바닥을 보며 걷고 있는데, 내 발 앞에 침이 탁 떨어졌다.
놀라서 고개를 든 내 눈과, 당황해서 흔들리는 그 학생의 눈이 마주쳤다. 학생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침을 뱉은 것이, 바닥만 보며 걷던 내 눈에 타이밍 좋게 딱 들어온 것이었다. 바닥을 보면서 걸으면 모든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웃겨서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학생에게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게 하면서도, 그때 나는 사실 속으로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그 학기의 내 에너지는 항상 아슬아슬하게 방전하기 직전이어서, 필요할 때 이외에는 마음의 전원을 끄고 기계처럼 움직였다. 종이 치면 수업이 시작하고, 종이 치면 수업이 끝났다. 수업 종은 언제나 정시에 울렸다. 아무리 삐걱여도 일상은 멈추지 않았다.
‘그 반’은 여전했다. 그런 반에서는 강의식 수업 외에, 준비해 간 활동을 하기가 두렵기도 했다. 그렇다고 다른 반에서는 다 했던 활동을 이 반에서만 안 하면, 다른 학생들이 경험할 기회를 빼앗는 것 같아서, 어쨌든 준비한 것은 요령도 없이 꾸역꾸역 다 했다.
가만 보면 ‘이런 거 왜 해?’라는 눈빛과 표정으로 그 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다수가 아닌 몇몇의 학생들인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이런 상황에선 뭐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모난 돌이 된다. 발표도 곧잘 하고, 틀린 대답이라도 잘하는 편이었던 학생, 어떤 수업을 해도 ‘재밌겠다!’는 눈빛으로 따라왔던 학생은 점점 기가 죽어서 나중엔 ‘죄송해요.’라는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 그 반의 학생들도 자기 반에 붙은 이름표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이름표를 떼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었을 것이라고,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집단 내에서 정서의 전염은 굉장히 빠릅니다. 때문에 몇몇 아이들이라도 자기 반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 시작하면 학급 분위기까지 나빠집니다. (중략) 자기 반에 대해 자긍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드가 안 맞는 반일수록 누적된 미움을 버리고 가능한 칭찬거리를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게 웬일이니?"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우리교육, <교실 속 갈등상황 100문 101답> 중에서
그러나 당시의 나는 나대로, 생각보다 나라는 존재가 학생들의 인생에 개입할 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선생님. 사실은요, 저희 반 몇몇 애들이, 선생님을 이상하게 부르면서 욕해요.”
그 반에서 수업을 할 때마다, 이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눈 앞에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수면 밑에 가려진 그 거대한 미지의 영역들을 생각하면 멀미가 났다. 내 멘탈이 이렇게 약했나? 아마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잘하고 싶었는데,
자는데 자꾸 깨우지 좀 마세요. 어차피 국어 해도 안 되는데.
그 해 교원 평가 기간에 한 학생이 적었던 내용을 기억한다. 익명이었으나 왠지 누가 적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내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이라면 정해져 있었으니까. 수업 시간에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잘할 수 있다고 독려하고 싶었던 신규 혹은 2년 차 교사 마음에 금이 쩍 가는 순간이었다.
담임반 아이들에게나 잘하자. 네가 무슨 능력으로 온갖 애들 문제를 다 떠안고, 다 해결하려고 해? 섣불리 너무 다가갔다가는 오히려 다친다. 수업에만 충실하자. 상호존중 하나만 원칙으로 내세우자. 그 즈음 일기에 썼던 내용이다.
수업. 그래도 계속 좋은 수업을 하면, 아이들도 나를 존중해주겠지. 언젠가부터 그 반을 들어가기 전에는 심호흡을 하고 웃는 얼굴 연습을 했다. 더 크게 웃으면서 들어가자!
“선생님, 그 반 춤 연습 좀 시켜주세요.”
학년 말에는 모든 학급이 춤을 하나씩 준비해서 발표회 같은 것을 하기로 했나 본데, 그 반은 유독 너무 준비가 안 되어서 힘들다며 내 수업 시간에 춤 연습을 시켜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그 반의 담임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나는 수업 시간을 할애해서 의욕 없는 서른 명 남짓의 학생들을 데리고 춤 연습을 하게 됐다. 텐션을 끌어올려서 으쌰으쌰 하며, 나름 대형을 맞추고 쉬운 동작 몇 개를 반복했다.
얘들아, 어차피 나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일단 뭐라도 하고 들어오자! 할 수 있어!
아무것도 안 한다는 반에서 이 정도로 따라주는 것에 나름 감동하며, 진심으로 다독이는 말에 조금은 이끌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발표회 당일엔, 흐느적거리며 등 떠밀려 억지로 올라가서 어색하게 눈을 굴리며 서 있다가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이 앞다퉈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시키고 바둥댔는지 허무해졌다.
그렇게 이번 학기는 시도하고, 허무해지고, 다시 시도하고, 잠깐 해냈다고 착각하다가, 또다시 허무해지는, 시지프스적인 순간의 반복...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애들 말도 잘 안 듣는데 끝까지 이끌어주시는 모습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었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