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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Aug 01. 2020

교사만큼은 절대 안 하려 했는데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어릴 때부터, 다른 건 다 해도 교사만큼은 절대 안 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왜냐하면,


너 교사해라. 여자는 교사가 최고래.


 내가 적당히 공부도 잘하고 누가  물어보면  알려주는 데다가 말도  듣는 모범생처럼 보여서 그런지, 아니면 절묘한 우연인 건지 뭔지,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내게 그런 얘기를 종종 했다. 바로   때문에 정말 교사하기가  싫었다.

 보기와는 달리(라는 것은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고집스러운 면이 있는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다짐했다. 교사 빼고 다 해야지.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면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도 교사는 일단 치워두고 봤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문학을 사랑하게 되면서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꿈꿨고, 언론계 쪽으로 진로를 찾으려 했다.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이 되어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야겠단 꿈에 부풀어 있기도 했고, 뭐 아무리 국문과를 가더라도 벌어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고등학교 3학년, 나는 노트 한쪽에 빼곡하게 ‘OO대 국어국문학과 합격’을 적으며 공부했고, 결국 원하는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합격했다.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이 펼쳐졌다. 미디어학부 이중전공에도 성공했다. 그때의 어린 나는 감히 인생을 내 계획대로 통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교직이수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도 왔다. 왔구나, 교사의 길. 신나게 걷어차 주리라. 나는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교사 안 할 거니까 지원하지도 않을 거라는 내 말을 듣고 당시 엄마가 말렸다. 나중에 안 하더라도, 지원은 해보라는 것이었다.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여기서 ‘정말로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는 나의 주장은 약간 흔들리게 된다. 정말 확실했으면 그런 말을 들어도 네가 하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교사를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다르지 않냐. 그때의 나는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과 ‘이걸 하면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것’의 교집합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점점 더 느낄 때였다.

 엄마의 부탁에 내 어쩔 수 없이 지원은 한다만, 교사는 안 할 거라는 말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존심은 교직이수 면접 때 드러났다. 그때 교수님이 물었다. “자네 교직이수를 하면 정말로 교단에 설 건가.” 나는 대답했다. “아뇨.” 그리고 난 합격했다.

 물론 저 말만 오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어보고 싶다. 저 왜 합격시켰습니까, 교수님...? 지금 와서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닙니다만....


 그 이후, 어느 날 뜬금없이 지역아동센터에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해서 처음으로 교육봉사를 하고, 다문화 가정의 학생을 가르치는 봉사도 하고, 대학교 4학년 때에 벼르던 해외봉사도 다녀오고, 연기도 배우고 연극도 하고, 나중엔 교생실습으로 한 달간 학교에서 중학생들을 만나고, 그 외에도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나는 성향과 내 삶의 가치관을 발견해갔다. 도전과 실패를 겪으며 매 순간 내리는 선택들 그리고 나 스스로 그것들에 부여하는 의미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나다운 것을 찾아갔고, 그러면서 교사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3학년, 장학재단 면접에서, ‘10년 뒤에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그때의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진 내 모습을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을 것 같다. 지금의 경험도 내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대학교 면접에서는 다짜고짜 ‘네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고 대답하고는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 감동해서 울먹였다. 그때의 기억은 내 영원한 흑역사다.


  그런데, 이야기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사람. 국어 교사도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흘러 흘러 2015년, 졸업을 앞둔 ‘수료’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처음으로 임용고시, 그러니까 ‘중등학교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이라는 것을 검색해 보고, 국어교육론과 같은 임용고시 문제집을 인터넷으로 부랴부랴 주문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교사가 되었다. 교사만큼은 절대 안 하려 했는데.


 “여자는 교사가 최고야.”라는 말이 싫었다. 여자니까 남자만큼 돈을 많이 벌 필요는 없지. 그래도 공무원이니까 안정적이고 적당히 벌면서 일찍 퇴근해서 살림도 할 수 있고, 애 교육도 왠지 잘 시킬 것 같으니까. 일반 사기업과 비교해서 그래도 육아휴직이나 복직이 자유로우니까 애 낳고 기르기 좋잖아. 또 그런 만큼 남자들이 아내 직업으로 교사를 선호하니까 시집도 잘 갈 수 있지 않아? 교사가 일등 신붓감이라잖아. -라고 뒤에 생략된 말들을 알아챌 만큼 성질이 더럽고 예민했기 때문이다.

 아니 누구에게든 최고인 직업이 있으면 있었지, 여자에게만 최고인 직업은 또 뭐란 말인가.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을 어느 누가, 어떤 권리로, 대신 결정지어 버린단 말인가. 물론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겠지만.


 그래서 내겐 어릴 때부터 오히려 ‘교사가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교사가 된다면 왠지 그 말들을 인정하고 거기에 순응한 것 같이 보일까 봐 싫었다.

 실제로 시험을 준비할 때 주변 사람들이 종종, ‘합격하면 시집 잘 가겠다.’, ‘일등 신붓감이다.’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말을 하는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고, 오히려 나에게 굉장히 친절했고 호의적이었다. 나는 (의외로) 사람 면전에서는 크게 화내거나 뭐라고 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냥 조용히 웃고 넘겼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저 시집 잘 가려고 교사하는 거 아닌데요.


 지금 생각한다. 그런 말들을 듣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난 교사를 제일 먼저 꿈꿨을지도 모른다고. 내 안에 교사를 꿈꾸는 나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고.


 교사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여자다운 것은 무엇이고 남자다운 것은 무엇인가. 그런 말들이 결국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들 중에 하나는, 그런 말들을 걷어차는 용기, 그리고 그런 말들에 반대하며 ‘너답게 살아’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아닐까.


 2020년 지금의 나는,
가장 나다운 교사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여자는 교사가 최고인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직업은 교사였다고 믿으면서, 교사로서의 자아를 받아들이고, 나다운 교사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교사다운 내가 아니라, 나다운 교사. 그리고 계속해서 내가 만나는 모든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그냥 너는 너답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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