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민현 May 04. 2019

냥줍에 대하여.

귀엽다고, 불쌍해 보인다고 훌쩍 안아. 버리실 건가요?

"냥줍"이라는 단어.

길에서 고양이를 줍는다는 의미이다.


실제 고양이를 키우는 반려인 중 무려 20%가 냥줍 했다는 통계도 있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잘 알지 못하고 선 듯 시작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냥줍도 그건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길에서 고양이를 줍는다는 것은 마음 가는 데로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그만인 그런 일이 아니다.

아무리 길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고귀한 생명의 삶을 결정하는 일.

책임감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지만 "냥줍"이라는 가볍고 장난스러운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숲냥이 시절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는 "달래" (뒤편 카오스 무늬 고양이)


냥줍 되었다가 버려진 후 구조되어 가족이 된 "달래"



몇 번인가 돌보던 고양이가 사라졌다가 몇 개월이 지나 나타난 일이 있었다.

원래라면 어미와 함께 지내다가 그렇게 어른이 되었어야 할 그 고양이들은 귀엽고 앙증맞은 아기 고양이 시절 사라졌다가 커서 발정이 올 무렵 다시 나타났다.


말 그대로 "냥줍" 당했다가 다시 버려진 고양이들이었다.


주워갔던 고양이를 다시 주웠던 그곳에 데려다 놓으면 다시 적응하고 잘 살 꺼라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 고양이들은 영역을 잡고 살고 있던 기존 고양이들에겐 불청객일 뿐이었고 그 고양이 또한 사람과 사는 삶에 익숙해져 오히려 고양이를 두려워하고 사람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적응하지 못하고 물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 심지어 다른 고양이들에게 쫓겨 다니며 상처 입는 경우도 있었다.


길에서 태어났지만 사람에게 길들여졌고 다시 길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집고양이인 아이들..

그 아이들이 배운 생존법이란 사람에게 애교 부리고 사람을 기다리는 방법뿐.


며칠을 지켜보다 결국 구조한 그 고양이들은 버려졌던 상처를 안고 무서웠던 길에서의 생활에서 구해준 존재인 사람에게 오히려 더 의지하는 고양이가 되었다.

아기 때 사라졌다가 성묘가 되어 다시 나타난 "사랑이"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쉽게 "냥줍" 하지 말아 달라고. 감기가 걸리거나 아픈 아이들은 몸도 얼굴도 엉망이고 보기 흉한 경우가 많은데 그런 아이들이라면 냥줍 하겠냐고. 정말 냥줍을 하고 싶다면 어미에게 버려졌거나 아픈 아이들을 "구조" 하거나 길에서의 고단한 삶보다 훨씬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을 때 해달라고. 그리고 평생 함께할 자신이 없다면 시작하지 말라고.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선 필수에 가까운 중성화 수술이 무엇인지도 몰라 발정이나 시끄럽다고 다시 버릴꺼라면 처음부터 손 내밀지 말아 달라고.


만약 "냥줍"했다면 새로운 가족이 된 고양이에 대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공부해야 한다.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애정 어린 손길로 돌보아 준다면 그 고양이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 더 큰 행복으로 보답할 것이다.




본 글은 2019년 5월 2일 국제신문 펫칼럼 기고 연재 내용입니다. ( http://me2.do/5l0TMKPm)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 방광염을 위한 고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