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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Feb 20. 2023

번역하는 베짱이

feat. 내 경험 이야기


최근에 번역 일 하나에 몰두하느라 글을 쓸 여유가 도통 없었다.     


일을 한창 할 때는 피곤하고 힘들어서 '이것만 끝내면 당분간 일 안 받을 거야!'라며 이를 갈아 대지만, 막상 끝내 놓으면 그렇게 또 마음이 후련할 수가 없다. 후련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잠시, 쉬는 날이 하루 이틀 길어지면 금세 마음이 초조해져 또 다른 일감이 없는지 이곳저곳 기웃거리게 된다.     


일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래도 꾸준히 일감이 들어오는 걸 보면 올해는 운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된 내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에도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 믿으며 한 번 해보려고 한다.





나는 넓은 분야에 두루 관심이 많다.     


좋게 말하면 호기심이 많은 것이요, 안 좋게 말하면 어느 것 하나 붙들고 진득이 해내는 끈기가 부족하다 할 수 있다.     


이 점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명백히 단점으로 작용한다.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생각을 연결해 시야를 확장하는 경험은 분명 개인의 내적 성장에는 도움이 되는 일인 것임이 틀림이 없지만, 도대체가 한 분야에 정착하지 못한 채 여러 영역을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과 수박 겉핥기 수준의 경험을 갖고는 이 전문화된 사회에서 밥 벌어 먹고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나는 정착민들이 사는 이곳에서는 여행자이자 이방인이나 다름없다. 명확한 목적지도 없이 세상을 떠돌면서 남들이 하는 일에 관심도 갖고 때로는 슬쩍슬쩍 배워 보기도 하지만, 정작 스스로 밭을 일구어 수확하는 일에는 영 젬병이다. 남들 눈에는 그런 내 모습이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베짱이나 다름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뜨내기적 갈망을 품고 사는 이가 현실 세계에 발을 붙이고 사는 데 한계를 보이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떠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족쇄에 얽매여 있듯, 결핍감을 애써 무시하며 꾸역꾸역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서서히 정신이 좀먹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불안감이 높아졌고, 신경이 예민해졌으며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당연하겠지만, 일의 능률도 떨어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을 다스리기도 벅차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관계에도 신경을 차단하게 되어 회사 내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져 버렸다.


그렇게 몇 년을 고민하고 괴로워하다 더 이상 이대로 있으면 스스로가 망가지겠다는 위기감이 들어 대책도 없이 무작정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그것도 애 딸린 유부남이 말이다. 얼마나 큰 진통이 있었을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제 와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 봐도 등허리에 식은땀이 늘 정도이다.



여기에 대해 궁색한 변론 아닌 변론을 잠시 해 보자면,


영화 평론가 이동진 님이 방송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분도 회사를 나올 때 무언가 대책이 있어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분과 동격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망가져도 좋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기 때문에 나왔다고 방송에 나와 하신 말씀이 내 힘들었던 마음에 크게 위로가 되었다. 거기서 한 5% 정도 힘을 얻은 나는 결국 결심을 굳혔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불행 중 다행(아내에게는 불행뿐이겠지만)이라면 회사를 나온 뒤로 건강을 많이 회복하였다는 것이다. 외적인 자극이 줄어들었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일이 더 쉬워졌다.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줄어드니, 자연스레 의욕도 생기고 점차 이런저런 활동도 늘어났다. 그렇게 기운을 차린 뒤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며 먹고살지에 대해 깊이 고민한 끝에 마음 한구석에 꼬깃꼬깃하게 접어 두었던 번역이란 카드를 다시 꺼내 들게 된 것이다.







번역 일은 넓고 얕게 파길 좋아하는 내 성향에 다행스럽게도 제법 잘 맞는다.


깊게는 아니지만, 이것저것 귀동냥으로 들은 게 제법 있으니 어떠한 글을 번역할 때도 평균 이상은 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전문 용어가 포함된 글이 많으면 힘들다.)



살면서 워낙에 사고방식이 남들과 다르게 이상적이었고 현실과 유리된 삶을 동경하는 일이 잦아 주변으로부터 질타 섞인 말도 많이 듣다 보니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걸 조금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번역 일은 나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거라 그런지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은 없어서 좋다. 게다가 번역이라 할지라도 일단은 읽고 쓰는 일이기 때문에 원문을 깊이 읽다 보면 나름의 재미가 있어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이는 독서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떠돌이 나그네의 삶을 꿈꾸는 나에게 있어 이러한 번역 일은 실제 현실에서 충족하기 어려운 아주 약간의 대리 만족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번역 일이 아직까지는 좋은 점이 더 크게 느껴지지만, 노동의 대가를 받을 때면 회의감이 밀려온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하나 맡아할 때보다도 훨씬 더 힘들고 공들여서 일을 하는데, 어렵게 공부해 얻은 지식을 활용한 내 정신적 노동의 가치가 아르바이트 시급 수준 정도밖에 되지 않다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할 때면 허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앞길이 그리 밝지 않지만 그래도 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겠다 생각하는 건,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AI의 무서운 성장세가 두렵긴 하다)


이 점이 바로 내 인생의 방향키를 주도하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가 될 듯하다.


나는 비록 거칠지라도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배고픈 베짱이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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