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요즘에는 개인이 무언가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기 위해 들여야 할 노력이 점차 심화되어 간다는 느낌을 강하게받는다.
이는 아마도 사회가 점차 성장하고 고도화되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한 사람의 개인으로 해낼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일의 성패를 가르는 데 있어 개인의 노력보다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밑바탕(쉽게 말해 부모의 배경)과 약간에 운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사회는 과거 어느 때 보다도 고도로 성장하고 있는 데다, 지금도 그 성장세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개인이 의지를 갈아 넣어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기란 이제는 요원한 일이 아닐까?
붉은 여왕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붉은 여왕 가설이라고도 불리는 이 용어는, 19세기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럴이 지은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수록된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거울 나라는 한 사물이 움직이면 다른 사람도 그만큼의 속도로 따라 움직이는 특이한 나라인데, 이곳에서는 목적지까지 이동하려면 주변의 속도보다도 더욱 빠르게 움직여야만 목적지까지 다다를 수가 있다.
앨리스가 숨을 헐떡이며 붉은 여왕에게 묻는다.
“계속 뛰는데, 왜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내가 살던 나라에서는 이렇게 달리면 벌써 멀리 갔을 텐데.”
붉은 여왕은 답한다.
“여기서는 힘껏 달려야 제자리야. 나무를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이 용어는 많은 학문 분야에서 인용되고 있는데, 주로 진화 생물학과, 시장경제에서의 기업 경쟁에 관한 연구 등에서이 개념이 차용되고 있다.
이 붉은 여왕 가설 현상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현상이며, 이는 우리가 심각하다 생각하는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군비 경쟁, 입시 지옥, 부동산 가격 폭등, 저출산 등, 각각의 표면적인 현상은 다르게 표출되지만, 본질은 경쟁 와 생존이라는 인간의 근본적 심리에 그 기인을 두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 시대 사람들은 다들 너무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그 노력의 배경에는붉은 여왕 가설처럼 주변의 속도에 발을 맞춰 가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위기감 때문에 너도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력하게 달리는 일 밖에 할 수 없게 만드는 어떠한 관성 같은 힘이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계속해서 달려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 거울 나라에 사는 것이 싫다.
자신이 원해서 뛰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다들 뛰니까 뛴다는 사실은 더욱 싫었다.
그래서 이곳을 벗어나고자 앞이 아닌 사선으로 뛰어 보기 시작했지만, 쉴 곳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유도 모른 채 관성처럼 달려가고 있다.
어쩌면 뛰어야 하는 진짜 이유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흐름을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속도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소심한 반항을 이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