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번역 일을 시작하기 전엔, 아무래도 원문 구조가 비교적그리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빨리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역시 세상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나 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정말 많이 쓰이는 한자어를 제외하곤 어려운 한자어의 사용은 지양해야 한다. 게다가 부드럽게 말하듯이 쓰려다 보니 평소 사용하지 않던 부사 표현과 줄임말도 많이 쓰게 되었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조심스레 다가와 너의 두 뺨을 어루만지곤 했지. 무척 보드라운 데다, 참으로 따스했어. 기다랗게 생긴 형체의 모습도 보였단다.
지금은 제법 익숙해져 괜찮긴 하지만 처음 할 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꽤나 애를 먹어, 일부러 아동서적도 좀 찾아보고 인터넷에서 글도 찾아봐 다양한 문체를 눈에 익히는 등 정성도 많이 쏟았다.
고백 아닌 고백을 해보자면, 나는 비교적 글을 쓰기 시작한 경력이 짧은 편이다.
책도 본격적으로 탐독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고 이렇게 내 생각을 글로 써본 경험은 그보다도 짧은 편이다.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 글을 쓰려다 보니 아무래도 나한테는 딱딱한 비즈니스 형식이나그나마 많이 접해 본 인문 서적 번역 어투가 익숙한 편이다.
잠시 다른 얘기지만, 나는 비록 번역어투라고 해도 외국 소설 또는 역사서 등에는 그 나름의 느낌을 줄 수 있다면 긍정적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게다가 짧은 문장으로 압축적인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할 수 있다는 분명한 장점도 있기에 잘 정돈된 번역투는 나름의 확고한 매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샜는데, 어쨌든 이러한 개인적인 환경적 영향으로 나 역시 다소 딱딱한 어체가 익숙했지만,어쩌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글을 번역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표현력이 크게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남들에겐 별것 아닐지도 모를 테지만, 나는 예측되지 않은 의외의 결과를 즐기고 좋아하는 편이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언어를 공부하며, 번역을 하는 등 이러한 활동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막연하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확고한 목적성을 갖고 시작한 건 어떠한 것도 없었다. 그래서 자유롭고 좋기도 했지만, 때론 불안하고, 허무하고 쓸모없게도 느껴지기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전혀 별개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이 느낌은 늘 새로운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무언가를 이뤄내고 큰 목표를 향해 아등바등하는 삶은 나에게는 매력 없다.
나는 큰 흐름에 상관없이 그저 막연하게 이리저리 마음 내키는 대로 흘러가는 삶을 지향한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그동안 내가 그려낸 삶의 궤적이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되었고, 내가 그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면 그것만큼 뿌듯한 인생도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비록 불안하지만 오늘도 목적 없이 내키는 대로 살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