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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Apr 13. 2023

신뢰의 비지니스

일과 신뢰에 관한 생각

 오랜 기간 진행해 오던 프로젝트가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제법 체력적으로 지쳐 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워낙 꾸준하게 안정적으로 일을 받기도 했던 데다, 나름 괜찮은 피드백을 받았기에 프로젝트가 끝나간다는 느낌이 후련하면서도 어딘가 아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얼마 전, 클라이언트와 주고받은 메일의 오프닝에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남겼었다.


나 :

Hello OOO
Finally, the long journey of the project is now about to end.
It's a kind of bittersweet feeling.

*bittersweet : 시원 섭섭한


그러자 음과 같이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Otherwise, I think we ll have new projects.
maybe you can be involved if you re interested.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을 예정인데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무언가 의도하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벼운 제안일지라도 이렇듯 선뜻 함께 하자는 말을 해 준 건 어쩌면 그만큼 내가 쌓아온 성실과 노력이 약간의 신뢰를 형성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무언가 간질간질한 기쁨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보수를 받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 섞인 기쁨과는 다른 조금 더 순수한 감정의 그것이었다.




문득 이 일에 뛰어들어 처음 프리로서 일을 계약할 당시 아내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니! 대체 그 사람은 뭘 믿고 당신한테 일을 맡긴대?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아내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선뜻 일을 한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도 않고, 썩 내키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도 그럴게, 당시 제대로 된 계약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달랑 주고받은 의뢰 메일 몇 개와, 일을 하고 보낸 청구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당시엔 나도 어딘가 조금 허술하다 생각은 했어도 '다들 그렇게 한다던데?'라고 하며 넘어갔지, 시간이 지나 프리랜서로서 자신만의 비지니스(1인 비지니스도 비지니의 영역으로 본다면)를 경험하다 보니 어쩌면 비지니스란, 상호 간의 계약 관계를 통해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루어 나아가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말로 비지니스의 본질일 수도 있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어떠한 공신력도 없는 '신뢰'란 모호한 감정이 비지니스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나의 말이 참으로 피상적이고 나이브(naive)한 소리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말이 맞다. 신뢰만 가지고 일을 하기엔 세상은 결코 녹록지 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마치 정직하면 손해 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정직의 가치가 빛을 바라지 않듯이, 어쩌면 모든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게 바로 이 신뢰의 가치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번 해 본다.


그 오랜 기간 직장인으로 일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자기를 신뢰해 준 이를 위해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고, 신뢰에 대한 보답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는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를 이 기본적인 선순환 흐 날 갈수록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일상적인 일보다는, 그저 보고하기 좋고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당장 눈에 들어오는 이벤트성 업무에만 주의를 쏟아야만 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방향을 잃고 한 안 헤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 이 '신뢰'라는 단어가 나에게서 많이 멀어게 되었던 듯하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일'을 통해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타인과 자신을 신뢰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런 의미 있는 ''하려면 타인과 자신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오랜 기간 잊고 있던 신뢰받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것만으로도 나의 무모한 도전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만일 누군가 지금 나와 같은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리고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면, 또 다른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새로운 일에 한번 도전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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