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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 Lee Apr 12. 2017

파도 앞 모래성 '기대와 환상'

소설 <운명과 분노> 서평


그들은 그 이후로도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어떻게 행복하게? 소녀는 궁금했다. 고약한 호기심이 엉뚱한데 발동이 걸렸던 건 인정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라는 확신이 있다. 그땐 어떻게 행복하고 예쁘게 살았을까가 궁금했다. 아기도 낳고 알콩쓰 달콩쓰 행복하게 잘 살았겠지. 클리셰가 뚝뚝 떨어지는 엔딩에도 설레어하던 소녀의 시간이 나에게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결혼 적령기를 정신없이 지나고 있는 지금은 더 이상 그런 건 궁금하지 않다. 그저  행복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값이 그들에게도 존재하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예민할 때 이런 엔딩을 마주하면 나는 가끔 고개를 젓고서 중얼거리기도 한다. 30년째 결혼생활 중인 우리 엄마도 잘 하지 않는 말을. 


저게 끝이 아닌데.


짐작하겠지만, 맞다. 나는 그리 결혼 자체에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도 다른 모든 이유를 제치고 결혼생활에 대한 소재 때문이었다. 그것은 명백한 양가감정이었다. 나의 이 부정적인 마음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위로하는 소설이 되진 않을까 싶은 마음과, 맞아 그러니까 신중해야 하고 굳이 할 필요 없으면 하지 말라며 지지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겐 필독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감정이 뒤엉켜있었다. 그러나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은 그런 구태의연한 장면들에 페이지를 소비하는 그런 로맨스 소설이 아니었다. 읽은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여운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느끼고 있을 정도로, 후폭풍이 거센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두 권을 한 권으로 합본 해 놓은 것처럼 보이고, 또 읽다 보면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 갈래로 나뉜 <운명>과 <분노>는 그 정도로 다른 문체와 다른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결혼과 관계'로 인하여 두 갈래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점으로 만나게 된다. <운명>을 읽으면 <분노>가 궁금해서 분노가 일 지경이고, <분노>를 읽고 있으면 <운명>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불편한 진실에 분통이 터진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려 서평을 신청했을 때 받게 된 당부의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소설은 <분노>가 꿀잼이니 끝까지 정독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겐 초반의 <운명> 파트가 고역이 될 수도 있다. 요즘 말로 고구마 답답이가 딱 들어맞을지도. 하지만 읽고 나면 이 책의 진가는 <운명>에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운명>은 한 마디로 '남자의 일생'이다. 크게 보면 한 남자가 평범하게 태어나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한 여자에게 정착한다. 백만장자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상속자가 되지만 운명적인 결혼을 한 탓에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아내에 의지해 살아간다. 배우가 되고자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그는 '극작가'라는 뜻밖의 엄청난 재능을 발견하고 그로 인하여 스핀오프 된 꿈을 이루고 성공한다. 각종 찬사를 받고 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그 이후엔 뜻밖의 엄청난 비밀(?)을 알아버리고선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언뜻 보기엔 <운명>의 주인공 '로토'는 연인 '마틸드'와의 결혼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작품 내내 그려진다. 어머니와의 인연도 끊다시피 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 속내를 내비치기도 한다. 성공하고선 자신의 성공의 공로를 적절히 아내에게 돌리는 이상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크게 보면 문제가 없는 남편의 모습이다. 하지만 무언가가 분명 빠져있다. 아내는 있지만 '마틸드'는 없다. 구성이 극적이긴 하지만 이 모든 것, 큰 얼개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우리가 어릴 적 익숙하게 알고 있던 결혼생활의 현실적인 면이 보인다. '로토'는 '아내'를 찾지만 '마틸드'를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그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가정환경과 운명으로 점철된 그의 모든 삶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마틸드'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굳이 밝히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끈끈하기보단 원활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까. 그래서 모든 서술이 '로토'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운명>을 읽으면 '로토'가 죽음을 맞게 되는 원인이 운명적이나,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일은 그의 결혼생활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던 '기대와 환상'의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가 버린 일 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의 패러독스, 즉 결코 누군가를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알고 있음을.


이어지는 <분노>에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결혼생활에 지장이 없었던 '마틸드'의 이야기와 미망인이 된 후의 그녀의 생활과 견고했던 그녀의 삶을 무너뜨린 존재에 복수하려는 이야기가 분주하게 돌아간다. 처음 <분노>의 이야기는 상실감과 그녀가 결혼생활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녀가 '로토'에게 자신의 결혼 전 삶을 왜 이야기할 수 없었는지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기 보단 그녀의 시선으로 보이는 '로토'의 기대와 환상이 부부생활의 핵심이었기에 굳이 그것을 깨트릴 필요는 없음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기대와 환상을 깨트린 이에게 복수하려는 마틸드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녀의 복수가 한창인 중반부가 지나가고 기승전결의 '결'이 보이기 시작해 모든 인물들 간의 관계와 숨겨진 이야기들이 인터넷 팝업창처럼 여기저기서 튀어 오르면, 결혼과 연애와 관련한 또 하나의 명제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떠오를지도 모른다. 아니다. 확실히 떠오를 것이다. 그 명제가 확실히 떠오르면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문장에 끄덕이고 웃을 수 있다면 독자는 완벽한 관찰자가 될 수 있다. 사실 이 문장은 나도 읽고 나서 불현듯 떠오른 것이라. 읽을 때 떠올랐다면 무언가 허무함을 감출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문장은 한 문단이나 써 놓고도 굳이 밝히지 않으려 한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 문장을 알고 책을 시작했다면 나는 이 책에 깊이 몰입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힌트를 주자면, '기대와 환상'의 모래성은 로토 혼자만 쌓았을까.


제발. 결혼이란 건 거짓말투성이야. 대체로는 친절한 거짓말이지만. 말하지 않는 거짓말 말이지. 날마다 배우자에 대한 생각을 입 밖에 내어 말한다면 결혼생활을 짓밟아 뭉개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야. 그 애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단다.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스포를 당했음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화려한 문체와 '로토'가 운명적으로 극작가가 되고 난 후에 수록되는 형식으로 서술되는 그의 작품들 또한 이 책의 포인트다. 사실 숲으로 본다면 이러한 화려한 구성과 문체는 숨은 그림 찾기의 지우개나 낫처럼 가려진 <떡밥>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체의 문체와 표현이 수려하고 참신하기에 그 자체로도 글을쓰는 문장력을 키우기 위해, 소설의 구성을 스스로 독학하는 데 귀중한 참고서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운명>은 초반부 속도감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느린 진행을 보이다, 중반부로 갈수록 빠른 시간의 흐름과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어쩌면 작가 스스로 한 사람의 인생이 자신의 인생에서 느끼는 속도감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에 다시 한번 놀라운 작가의 역량을 느꼈다. (끼워 맞췄다면 뭐... 할 말이 없습니다만.)


그러나 완독에 성공해서 밝히는 것이지만, 사실 이 소설 그리 읽기 쉬운 편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영미문학과 번역체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고, 이 책 직전에 읽은 소설이 공교롭게도 한귀자의 <모순>이었던 지라 문체의 간극이 정말이지 엄청났다. 그녀의 간결한 문체에 적셔져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았던 탓에 처음엔 굉장히 당황했다. 간결한 문장이라고 해도 정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게다가 <분노> 부분을 보다 보면 끊임없이 <운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고, 내가 그리스 고전과 신화 속 인물에 밝지 않아 어쩌면 이 책을 100퍼센트 즐기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이 책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흔한 카피 패러디에 스스로도 몸서리가 쳐지지만, 달리 표현할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 건 실제로 이 책을 오후 1시에 시작해서 그 날 새벽까지 90퍼센트 가까이 모두 한 호흡에 읽어내렸기 때문이다. 


서평을 마친 후, 나는 다시 한번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엔 단번에 모조리 읽어 내려가지 않고, 문장을 차 마시듯 꼼꼼히 읽어 내려갈 생각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시작한 책이었지만, 그 외 삶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후폭풍으로 다가온 책이라 어느새 특별해져버렸나 보다. 폭풍을 잠재울 수 있는 나만의 답 또한 같은 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기대감이 든다. 영미문학, 관계에 대한 딜레마, 결혼, 더불어 언급하진 않았으나 페미니즘에 관심 있다면 꼭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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