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가방은 늘 무겁기만 했다.
어릴 적 부터 내 가방은 항상 무거웠다. (그 어릴적의 기준은 초등학교 1학년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꽤 성실한 어린이로 자라나 모범적인 여고생이 될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내 가방은 정말이지 항상 무거웠다. 초등학교 시절,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가방을 매고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는 깡마른 아이를 발견한 동네 어른들은 내 가방 꽁무니를 들어보시고는 뭐가 들었기에 그렇게 가방을 무겁게 들고다니냐며 그러다 키 안 크겠다 걱정섞인 목소리로 나를 지나쳐 가곤 하셨다.
필통 수학책 수학익힘책 국어책 슬기로운 생활 바른생활 알림장 연습장. 사물함이 있는데도 나는 주구장창 책들을 다 등하교시에 봇짐지듯 매고다니곤 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그렇다고 집에 가서 학교 공부를 그리 열심히 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보습학원은 그땐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고 예습, 복습과는 거리가 먼 학습태도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을 놓고 부리나케 천국같았던 피아노학원으로 달려갔다. 피아노가 끝나면 다음날 아침에 전화올 윤선생 영어교실에서 준 테이프를 들으며 할당된 페이지를 공부해야했다. 세일러문을 보려면 눈높이 수학도 밀리면 큰일이다. 그나마 숙제가 있으면 교과서를 마주하는게 전부였는데, 학교가 끝나면 다른 걸 하느라 정신 없었는데도 나는 부지런히 교과서를 등에 지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뭔가 가득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그 성격은 어릴적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 나의 첫 책가방은 핑크색 헬로키티가 그려진 둥근 직사각형 모양으로, 당시 가격은 4만원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거의 10만원에 가까운 가격이 아닐까 짐작한다) 고가의 가방을 핑크색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욕심내던 나를 엄마는 어르고 달래고 혼내서 겨우 진정을 시켰다. 거의 포기하던 찰나, 대전에 사시는 이모가 놀러오시는 기가막힌 타이밍을 맞게 되면서 어린 여우는 엄마와 가장 친하고 너그러우셨던 이모에게 순수한 눈빛으로 그 욕심을 비치는 데 성공하여, 가방을 손에 얻어내고야 만다.
그 가방은 초등학교 입학생에게는 아무리 봐도 큰 가방이었다. 그래서 그 가방에 온 교과서를 다 넣고 다녔다. 필통은 온갖 색연필과 연필 너댓자루를 꾸역꾸역 채워 무거운 상태가 되어야 가방 속 일원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 가끔은 집에 들렀다 가지고 가야 할 피아노 책까지 넣고 가녔다. 아이의 걸음으로 20분이 넘는 거리를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다녔으니, 아마 그때 가방이 가벼웠다면 내 키는 지금보단 훨씬 컸을지도 모른다.
그 습관은 중학교때는 책이 아닌 카세트 테이프로,(다 듣지도 못하는데 가방에 괜히 카세트테이프 서너개씩은 꼭 들고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문제집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며 계속되었다. 그 절정은 고등학교 3학년 때로, 백팩에 언수외 문제집을, 보조가방을 사서 사회탐구 문제집을 채워 매고 다녔다. (반 1등이었던 친구를 따라하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반전은 우리집은 학교에서 걸으면 10분도 안되는 발코니에서 우리 반 창문이 보일정도의 거리였고, 나는 학교 앞 독서실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얼마든지 밖에 나갔다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혹시 모르니까. 시간이 남으면 필요할 지도 모르잖아'
빈칸을 보는 게 싫어 가방을 채우던 아이는 곧 필요할 때 손에 쥐어지지 않으면 초조해지는 게 싫어 스스로 짐을 만들고 있었다.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타입도 아니었건만(그 때 당시 나는 매일의 계획이나 강하게 들어가고자 하는 대학도 없었고 오로지 재수를 하지 않으면 내년에 좋아하던 가수를 볼 수 있다는 믿음하나로 공부를 했다) 언수외사 모든 과목의 문제집을 곁에 두어야지만 학습에 집중 할 수 있었다. 참으로 쓸 데 없는 강박이라고 밖엔, 달리 평할 수 있는 말이 없지 싶다.
스무살 이후에도, 서른이 다 된 이 시점에도 내 가방은 여전히 무겁다. 여행이 대표적이다. 주로 혼자다니기 때문에 아침에 숙소를 나설때 나는 온갖 '혹시 모르니까'를 내세워 가방을 채운다. 혹시 비가 올지 모르니 우산, 혹시 화장이 번지거나 망가질지 모르니까 파우치에 화장품은 넉넉하게. 혹시 휴대폰 배터리가 부족 할 지 모르니 보조배터리, 휴대폰이 안 터지면 찾기가 힘드니 여행책, 그 외 계절마다 필요한 휴대용 선풍기라던지, 겨울에는 방한용품 등등. 사실 일상에서는 여행책이 읽을만한 책 한 권으로 바뀌면 위에서 밝힌 리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에 여행을 다니면서 쇼핑이라도 하게 되면 본래의 짐에 다른 짐이 더해져 밤에 숙소에 돌아오면 어깨가 무너지기 직전이다. 내가 미쳤지 비도 안오는데 뭣하러, 기름이 좔좔 흘러도 거울 한번 안 보면서 화장품은 왜 가져갔는지, 와이파이 빵빵한데 가이드북이 웬말이니. 매번 침대에서 어깨를 두들기며 후회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망할놈의 습관.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젠 가벼운 어깨로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많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거다. 10년 째 절친인 친구 S는 빈손으로 다니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 이라고 몇 해 전 내게 말했다. 그 말에 좀처럼 동감할 수 없었던 나는 문득 어느 날 손에 휴대폰과 카드지갑만 들고 밖을 나서도 전혀 불편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아침에 '혹시 모르니까'를 되뇌며 가방을 채우는 일상을 살고 있다.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느끼는 불안감을 견딜 수 없음에, 감당못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삶이야 말로 내가 가장 무겁게 지고 있는 짐이다. 외출 할 때마다 가방 속을 들여다보며 든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무겁냐며 한숨을 쉬지만 쉽지않다. 사실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혹시 모른다는 마음이 아니다.
이미 내 것임에도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는 욕심이다. 이름까지 써 있어 온전히 내 것 임에도 잃어버리지 않으려 가방을 채우던 어린아이는 20년이 지나도 그리 자라지 않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