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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 Lee Oct 19. 2016

카메라 이야기

너무나 무거웠던, 그래서 너무나 가벼워져버린 기억들




카메라는 내가 온전히 내 돈을 모아서 산 첫 번째 물건이다.     


어릴 적 내가 수중에 있던 용돈으로 살 수 없었던 물건을 얻는 방법은 매년 생일을 기다리거나, 시험성적을 올리는 것 정도였다. 먹고 사는데 무리는 없었지만, 자녀가 사달라는 값이 꽤 나가는 물건을 덥석 사주기에는 약간 부족한 정도의 형편이었기에, 나는 고가의 물건에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제법 바르게 자랐다.     


그러던 내가 카메라에 관심을 보인 건 스무 살, 고3때 친구들과 함께 간 홍콩여행이 계기였다. 그 때만 해도 나에게 카메라는 한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디지털카메라거나, 본가 장롱에 숨어있는 30년 가까이 된 니콘필름 카메라가 전부였다. 그러나 우연히 홍콩여행에서 친구가 가져온 DSLR 덕분에, 카메라의 범위는 그렇게 넓어지게 되었다. 홍콩여행을 마친 후 나는 꽤 오랫동안 DSLR을 간간히 떠올렸다. 닿을 수 없는 물건인 건 맞는데, 왜 자꾸 생각이 나던지. 그때 나는 대학 입학선물로 받은 콤팩트형 디지털 카메라로 나와 그때 만난 동기들의 일상, 동아리방, 수업을 등지고 나선 곳곳을 찍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사진찍기’에 열정적인 스무 살 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고급진 카메라에 눈을 돌린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당시의 DSLR붐에 편승하여 유명한 동호회와 사이트를 뒤져 갖고 싶은 목표물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유물이 된 캐논 450d를 목표로 하여 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카페알바, 단기알바, 마케팅간담회 알바 등등, 이것저것 했지만 고정적이지 않았기에 돈을 모으기엔 수월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 시기에 지인에게서 과외가 들어와 공부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어느 치킨집 아들내미의 언어와 사회탐구를 가르치게 되었다. 첫 달 과외비를 선불로 받고, 나는 지금은 없어진 솔로몬 저축은행에 가서 6개월 만기 정기적금을 가입했다. 참고로 그때당시 금리는 6.2퍼센트였다.     


그렇게 6개월을 열심히 일한 나는 적금으로 450d를 손에 얻었다. 비록 중고 번들셋이었지만 상태는 양호했고 일부러 용산까지 갈 필요도 없을 정도의 풀세트에 세로그립(지금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는 주변기기)까지 포함된 알찬 구성이었다. 95만원인가를 주고 샀던 거 같다. 그날 나는 동아리방에서 개봉식을 하고 그곳에 있던 모든 이의 사진을 한 장씩 찍었다.     


나와 450d의 연애는 참으로 애틋하고, 뜨거웠다. 보급형이라 바디가 작아 들고 다니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속된말로 간지가 났다. 동아리에서 가는 모든 MT의 사진기사는 나였다. 지금도 동아리 싸이클럽에 가보면 80퍼센트는 내가 찍은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을 정도다. 친구들과 잠깐 만나는 자리에서도 사람이든, 음식이든, 풍경이든 무조건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적당히 예쁜 색감으로 보정이 되어 나의 미니홈피에 올려졌다. 집에 있지 않은 거의 모든 시간을 450d와 함께했다. 그러면서 학생에게는 하등의 부질없는 장비욕심까지 생기게 되면서 생일선물로 보급형망원렌즈를 받았고, 용산에서 발품을 팔아 단렌즈와 크롭바디를 보완할 광각이 넓은 렌즈를 샀다. (그땐 렌즈의 풀네임을 다 줄줄 외우고 다녔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에도 새롭고 신기한 많은 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캐나다 로키, 벤쿠버의 명소들, 혼자 여행 간 미국 서부, 보스턴, 뉴욕까지 모두 450d로 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체력도 좋아서 카메라에 단렌즈 망원렌즈까지 낑낑거리면서 죄다 들고 열두시간씩 걸었다. 그땐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다. 다시 오기 힘든 곳들이니까, 지금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가장 젊은 시간이니까,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때의 사진들을 보면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사진 찍느라 고생한 내가 더 많이 느껴진다.     


450d와 멀어진 건 바로 ‘사진 찍느라 고생한 나’를 발견하고 나서였다. 어떤 여행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여행에서 나는 문득 여행을 와서 눈으로 보는 것보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그곳의 풍경을 더 오래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어떤 카메라도 사람의 눈과 동일하게 피사체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저 사진만 찍어댔던 것이다. 좀 더 오래 기억하고자 했던 행위의 목적은 없어지고 행위 그 자체를 집착하고 있었던 거다. 그 모든 집착이 부질없음으로 물들자 가볍게만 느껴졌던 카메라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스트랩을 지탱하고 있던 어깨가 아파왔다. 2013년 즈음, 나는 카메라를 두고 밖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 이후,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후 휴가지로 선택한 파리에서의 풍경을 담기 위해 나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구입했다. 이걸 계기로 사진을 다시 한 번 시작해보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메라는 파리에서만 사용했고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눈이 느끼는 여행을, 좋은 피사체에 집착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여행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카메라 없는 여행을 현재까지 하고 있다. 사실, 카메라보다 더 좋은 스마트폰 카메라와 어플이 있는데 뭐. 휴대폰만 있으면 인천앞바다도 산타모니카 해변처럼 찍을 수 있는 참 좋은 세상이다.     


카메라가 계기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좋아하는 물건이나 사람에 더 이상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아무리 좋고 좋아서 도망 갈까봐, 잃어버릴까봐 무서울 정도로 의미가 크게 다가오더라도 그렇지 않은 순간 또한 찾아온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어쩌면 조금은 가여운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나를 위로하자면 그렇기에 모든 순간을 눈과 머리로 담으며 그대로를 바라보려는 성숙한 어른이 된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450d와의 헤어짐이 준 건 어깨의 자유만은 아닌가보다.







꽤 오래전 써둔 이야기 입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된 때라서 분량도 적고 그렇네요.

지금도 서랍을 열면 450d와 소니 미러리스가 절 째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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