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한다는 강박의 끝
우리의 발리 여행은 끝났고,
나는 다시 수술대에 누웠다.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시간을 지나고 다시 치료를 이어간다. 그동안 많은 곳들이 알 수 없이 아팠다. 열심히 회복을 하다 무언가 해보려 하면 또 몸이 제동을 걸고, 좀 나아졌다 싶으면 또 다른 곳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세상에 나오는 것을 저지당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건강한 삶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자꾸만 얻게 됐다. 익숙했던 습관들을 하나씩 처분하고 새로 좋은 것을 들이는 과정을 여러 번 겪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 정도면 완벽한 삶의 형태라고, 이제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건강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나는 또 한 번 멈춰야 했다.
너 아직 멀었다고, 다시 더 고쳐보라고. 나름 정성껏 수정해 본 삶의 방식이 다시 또다시 반려되는 기분이었다. 온전하지 못한 내 몸이 원망스럽고, 대체 언제쯤이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아니 가능하긴 한 건지. 막연한 두려움에 숨 막히는 밤들을 보냈다. 죽을병도 아니면서 너무나 괴로운데, 그 마음을 설명할 방법도 의지도 없었다. 나는 너무 열심히 건강하고 싶은데, 이렇게 온 힘을 다 바쳐 노력하고 있는데, 왜 내 몸은 자꾸 여기저기 말썽을 부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도리 없이 또 엄마를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궁금하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그때 엄마의 얼굴 뒤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을지 조금 더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보였다. 누구보다 건강에 힘쓰던 한 사람의 육체가 병에 휩쓸려가는 장면을 보면서,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울며 불며 옆을 지키던 시간. 그 시간 내내 나는 너무 ㅡ 너무 두려웠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엄마를 잃을까 봐, 내가 엄마를 지키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렇게 지독하게 두려워서 언제나 고달프게 힘에 부쳤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도 지킬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잔인하게 배웠던 날들의 끝에는 엄마를 많이 닮은 내가 엄마처럼 아프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 그 마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보였다.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내가 잘 회복할 수 없을까봐, 또 다른 문제가 벌어질까봐, 내가 계속 아플까봐, 어쩌면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태가 될까봐.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 옆에서 내내 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 ‘어쩜 이리 커다란 마음으로, 평온한 삶을 성실하게 가꿔가던 사람의 육체가 병들 수 있을까?’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구할 수가 없어서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영 알아가야 할지 모를 그 답을 급히 구하느라 빙글빙글 맴돌던 시간, 그 방황의 끝은 이렇게 문득 오나 보다. 마침내, 드디어.
'어찌 이 몸과 마음이 멀쩡하길 기대했던 거지?’
문득 드는 생각에 머리가 띵-해진다. 삼십 년 넘도록 과격하게 사용해왔는데, 뭐가 좋은지 나쁜지 생각도 안 하고 멋대로 막 써왔으면서. 어딘가는 좀 닳고 어딘가는 좀 망가졌을 수도 있지. 여전히 새것처럼 쌩쌩한 것도 이상하네. 나는 내 몸의 문제에서도 내내 완벽을 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혹시나 가볍게 지나친 어떤 작은 상처가 불씨가 되어 온몸에 돌이킬 수 없는 병을 만들게 될까, 가능한 한 가장 빨리 나서지 않는다면 방법도 없이 늦어버릴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완벽하게 완전하지 않으면 모든 게 우르르 무너져버리게 될까봐 이 몸을 붙들고 어떻게든 고쳐서 새것으로 만들겠다고 강박을 부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오히려 두려움이야말로 지금 가진 모든 문제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죽음명상을 경험한 뒤로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마지막을 상상하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상황이 있다. 사람들이 불행할 때 삶을 포기하고 싶어 진다는데, 난 불행한 상태로는 도저히 억울해서 죽을 수가 없다. 차라리 마음이 편안한 날, 여한이 없이,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면 잘 살았다~ 하고 훌쩍 떠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을 각오로 산다’는 말을 ‘죽을힘을 다해서 열심히 산다’라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죽을 용기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한 강박을 버리고 지금 당장의 행복을 택하겠다는 의미다. 죽어도 괜찮을 정도로,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평온한 마음을 향하겠다는 의지다. 내가 아프기 싫다고 동동대다 죽느니 그냥 좀 아프더라도 그 와중에 재미있게 살다가 하하호호 웃으면서 죽어야겠다. 그냥 나는 죽을 용기를 내볼란다.
좀 아파도 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생각하니 그냥 또 살만한 느낌이다. 회복을 망칠까봐 두려운 마음, 더 다치게 될까봐 겁나는 마음이 내 몸을 더 무겁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열심으로 지키려는 마음이 내 발을 더 바짝 옥죄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되뇐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나름의 최선으로 관리 할 뿐, 그 이상은 나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완벽을 향하지 말고, 빠른 결과도 바라지 않고. 영영 정성으로 몸과 마음을 돌봐주며 순간을 잘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건강한 것들을 천천히 차곡차곡 쌓으면서 좋은 하루들을 자연스럽게 흘러가자. 그렇게 그냥 원하는 삶을 향해 파도 타듯이 가자.
지키고 싶던 마음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친다.
<엄마를 지키는 마음>을 지나 <나를 지키는 마음>, <마음을 지키는 마음>에 이르기까지
몸에 깃든 마음을 끄집어내 마주 보는 사이 내 삶을 조금 이해하고 가다듬을 수 있었다. 괴롭다고 해서 건너뛰어도 괜찮은 마음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결심에 도착한 이 여정을 뿌듯하게 여기고 싶다.
지난 시간 몸에 새겨진 패턴을 끊어내기 위해, 마음의 일부를 떠나보내기 위해, 막힌 시간과 공기를 털어버리기 위해 썼다. 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새로운 챕터를 시작할 용기를 갖기 위해 썼다.
이제는 애써 지키는 마음보다는 잘 흘러가는 마음으로 살기로 한다. 지켜내고 싶은 것들을 꼭꼭 움켜쥐고 사는 대신, 자유롭고 가볍게 좋은 곳을 향하면서. 여유롭고 따뜻한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나눠 주면서. 죽을 용기로, 하루하루 많이 웃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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