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헤맬 수 있는 사람으로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몸도 마음도 바쁜 하루가 지났다. 아쉬움에 파묻혀 동동 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마지막이라는 말은 언제나 목을 옥죄어오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땅에서 그곳을 그리워하듯, 돌아가서는 다시 이 땅을 그리워할 것을 알기 때문에 마지막은 언제나 애가 타는 게 아닐까. 내가 밟은 모든 땅에 애정이 담겨서, 또 어딘가로 돌아갈 의지를 품고서 자리를 지키고 다시 떠나고 돌아감을 반복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를 처음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넓은 세상을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새로 쓴다.
가장 안온한 곳을 두고 떠난 마음이, 더 열린 자세로 낯선 세계를 탐험하게 만들었다. 언제든 마음 둘 곳이 있다는 믿음이 모르는 길로 걸어보는 용기의 근원이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가진 끈끈하고 안정적인 환경 덕분에 나는 잘 헤맬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는 것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것도, 제 자리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그 사실도 모른 채로 그렇게나 헤매고 다닌 것이었다.
떠나고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궤적을 그리고 반경을 넓힌다는 것은 결국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는 일. 세상에는 더 좋은 게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 그래서 자꾸만 다시 욕심낼 수 있게 되는 것. 어제 모르던 꿈을 오늘은 꿀 수 있게 되는 것. 삶의 이상을 자꾸만 고쳐 쓰면서 그렇게 내가 가진 ‘완벽’이라는 성을 자꾸만 허물어가는 일. 그리고 그 과정을 기뻐할 수 있게 되는 일. 다칠지 몰라도 기꺼이 덤벼보게 되는 일, 스스로 허물고 허물리는 기쁨에 익숙해지는 과정. 그것이 내가 떠나는 이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싹부터 유난히 여행을 많이 다니는 가족의 구성원으로 자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는 언제나 여행이 가까이 있었다. 내가 많은 시간 떠돌아다니며 몸으로 배워온 것은 결국 모든 것을 깨어나가는 용기였다는 사실. 그것에 대해 유난히 많이 생각하는 계절이었다. 식구들은 겁도 없는 막내딸의 존재를 늘 불안해하면서도 언제나 더 많은 경험을 하라고, 더 큰 세상에 나가라고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감사한 줄도 모르고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자랐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이후의 삶은 모두 내 몫이 되었다. 당연하게 여기던 좋은 환경을 종국에는 내 손으로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깊게 생각하게 된다. 모르는 땅에서 만큼은 작은 것 하나까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었다. 좋고 나쁜 모든 결과를 스스로 감당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환경으로 나를 데려갈 것인가.
자리를 펴고 앉아 마지막까지 예쁜 이 땅의 하늘을, 해가 지는 광경을 지켜본다.
더 큰 세상을 보라고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더 큰 세상을 보고 더 큰 꿈을 꾸라고
더 용감하게 살라고 ,
더 더 더 대담해져도 괜찮다고 엉덩이를 팡팡팡 두들겨주는 것 같았다.
세상이 참 넓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얼마나 더 커다란 삶을 살 수 있을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최선으로 깨어나가며 살 것을 다짐한다. 성실한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지. 두려움에 머물지 말고, 나를 이 자리 그대로 여전하게 두지 않고서. 더 넓고 높은 곳으로, 용감하게 흘러 흘러가야지 다짐했다. 지는 해로 물들어버린 하늘을 가장 오래 보고, 가장 오래 손을 흔든 뒤에야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 모르는 풍경을 가로질러 걸어보는 것. 내 훌륭한 짝꿍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배로 충만해지는 날들이 많았다. 무척 많이 웃고, 예상을 초월하도록 어려워서. 그래서 더 완전해진 여행이었다.
완벽에 닿으려는 마음은 오히려 짐이 된다. 무거워지면 되려 완벽에게서 멀어진다. 완벽이라는 짐을 내려놓으니 조금씩 더 가벼워졌다. 완벽하게 루트를 짜고, 완벽한 공간에만 머물고, 완벽하게 우리는 웃기만 해야 한다는 의욕. 너무 소중해서 불쑥 튀어나와 버리는 ‘완벽한 여행’에 대한 괴상한 욕심을 버리는 순간 다시 가뿐해질 수 있었다. 완벽할 욕심을 버리는 일은 그야말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상쾌하고 자유로운 일이었다. 무엇이든 일단 스스로 부딪혀보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헤매더라도 직접 거리로 나가 내 눈으로 보고 내 발로 걷는 것이 가장 개운했고, 끝내 부딪히게 되더라도 최선으로 마음을 전해 보던 순간들이야말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어떤 무거운 애씀보다 단순한 내려놓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위대한 마음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진짜의 마음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 발견하고, 한 걸음 더 성장했을 것이다.
별 것인지도 몰랐던 20대 초 추억의 힘이 십 년이 넘도록 유효하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틈틈이 쌓아둔 좋은 기억에 기대어 많은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을 딛고 우리가 또 어떤 삶을 살아갈지 가늠할 수 없어서, 닿는 대로 많이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웃는 장면도 울던 장면도 모두가 소중한 날들이었다.
나에겐 언제나 굳은 믿음이 있다.
그 길이 좀 험하고 다이내믹할 수는 있겠으나, 뭐 어떻게든 마침내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믿음.
오늘의 엉망 같은 스케줄과 동선에도 결국 이렇게 멋진 일몰을 감상하게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코코넛 잼이 새서 가방이 젖었지만 맛있는 냄새가 나게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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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somewhere - anywhere, unfailingly, you’ll find yourself, and that, and only that, can be the happiest or bitterest hour of your life.
언젠가, 어디에선가 - 어디서든, 끊임없이, 당신은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그것만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거나 가장 쓴 시간이 될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 1904-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