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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노 Oct 22. 2023

09   Canggu : Trust your heart

내 마음 믿어

길의 끝에서 파도의 모서리를 보는데 난데없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 나 아직 여기 좋아하네.  몇 년 사이 천천히 우붓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짱구 Canggu에 와서야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다양한 도시를 선택하기를 참 잘했다. 역시 그때그때 마음에 충실하는 것만이 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며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고민이라고는 오늘 뭐 하고 놀지, 뭐 맛있는 거 먹을지 그리고 언니랑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지  정도가 전부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가, 뭐 또 안될 건 뭔데??? 내려놓는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내려놓기로 한 시간이라는 것을 끄집어 기억하려 한다.


아무 데나 나가서 그냥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5분도 안돼서 ‘내 맘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충전되는 동네다.  그야말로 자유를 선택한 듯한 이들로 가득 찬 동네. 어떤 특정한 단어로 정형화하기 통 어려운 캐릭터의 인물들. 외모와 옷차림, 에너지까지 제각기 다른 가지각색의 그들 사이에 서면 마음이 탱탱해진다.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유쾌하고 가벼워진다. 타인의 시선에 맞설 용기가 생긴다기 보다는, 타인의 시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에 가깝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내가 알거나 모르는 나 자신이 너무나 궁금해지는 것이다. 꼭 평범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데서 오는 용기다. 지난날 나는 평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변명을 생각해 내야 했는지...



나로 살 자유, 온전히 내 뜻에 집중할 용기. 그런 삶을 선택할 용기. 내 마음에 집중하고 내가 원하는 삶에 다다를 것을 선택하는 것 말이다.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것은 대충 산다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르다. 내 의지대로,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었던가. 핸들을 잡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던가. 스스로 만큼은 제2, 제3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다정하게 대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나라는 인간이 기뻐할 만한 환경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 그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눈앞에 펼쳐질 금빛 미래를 손 놓고 기다릴 여유가 이제는 없었다. 나를 정면으로 들여다볼 용기, 내가 가진 별로인 면까지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각오가 나를 더 나아가게 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알아내 그곳을 향해 발을 뗄 용기, 스스로를 믿고 내가 원하는 그곳으로 끝끝내 날 데려다 놓겠다는 각오가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 


삶에 주도권을 쥔다. 그럼에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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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프랙티스 The practice Canggu

‘힐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진짜 이건 세포가 하나하나 치유되는 감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네. 이 아름다운 요가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 생명력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리드에 따라 정성껏 호흡을 하는데 숨 하나하나 들어오고 나감이 벅차오를 정도였다. 무척이나 선명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내 삶에 무엇을 가까이 두고 살아야 할지, 그러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를 오래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당장 행복을 선택하는 데에 온몸을 던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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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와 벌레

겨우 얻어낸 커피타임.  취향은 아니지만 구석구석 사랑스러운 인테리어. 등허리에 따땃한 햇빛에 마음까지 녹는 것 같네. 야외와 맞닿은 바 테이블에 앉아 살랑이는 바람과 낯선 시야에 마음이 일렁이도록 둔다. 가장 소박하고도 호화로운 충만 충전 시간이로구나. 앞뒤 모두가 창도 없이 반 야외(?)인 특이한 건물이다. 그러고 보니 발리는 이런 건물이 많다. 이 날씨에 에어컨 없이 사는 레스토랑도 많다. 곳곳에 돌아가는 팬과 자연 바람이 만들어내는 살랑임이 좋아졌다. 몇 분 만에 키보드에 먼지가 쌓인다. 모니터도 뿌옇다. 벌써 몇 번을 쓸어내는 중이다. 서울이었으면 이미 경기를 일으켰을 일이다. 이렇게 불편한 게 많은데... 왜 이곳을 사랑하는 걸까? 아마, 이 또한 스스로 선택한 환경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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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고라이드 Goride

나만 생각해 본 짧은 아침도 있었다. 보통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언니가 원하는 것을 함께 해보는 것에 욕심을 두던 날들이었다. 나 오늘은 여기랑 여기랑 여기를 갔다 올래. 시간을 정해두고 모두 다 들러 오려니 시간이 빠듯했지만, 왜인지 오늘만큼은 단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드디어 스쿠터를 불러 탔다. 섬에서 스쿠터를 잘못 탄 뒤로 절대 피하던 참이었다. 심지어 여기는 좁고 험한 길에 정말 많은 스쿠터들이 서로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내달리는 동네라 극단적으로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별로인 것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몸을 통째로 맡겨 의지해야 한다는 기분 자체였다. (진짜 오바 조금 보태서 짱구 외국인들 중 반 정도는 사지 어디 하나에 붕대를 감고 있단 말이야...) 돌아가면 꼭 연습해 볼래 스쿠터. 핸들은 내가 잡아야겠다. 내 위험과 안전은 스스로 감당하면 그뿐이다. 다치더라도 억울하지 않다. 처음 자동차 운전을 배우던 때가 떠올랐다. 운전대를 잡으면 내 인생이 달라져버릴 것 같던 그 기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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