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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노 Jul 16. 2022

영원한 외출

카레와 장조림, 김치전 양념 같은 것들

마스다미리는 귀여운 만화만 그리는 줄 알았는데 산문집이 있었고, 나는 그걸 굳이 골라 바다에 가지고 왔다. 하필 그 책은 삼촌의 죽음으로 시작되어 아버지의 암 판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모른채로. 마스다미리는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와 이야기하기’라는 새로운 이벤트로 어린 시절 취재를 시작한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그에게서 들어두고 싶은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없었다. 대충 다 들은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는 새삼스럽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어볼까.’


죽음을 실감할 때 오히려 삶은 선명해진다. 아니 선명하게 가다듬게 된다. 영영 사라진 뒤 후회할까 두렵고, 마지막 기회일까 작은 것도 부여잡고 의미를 더한다. 나 또한 살면서 궁금한 적 없던 것들을 괜히 끄집어 자꾸 물어보곤 했다. 어쩌면 너무나 사소하지만 영원히 알 수 없게 될 엄마의 지난 시간들을 열심히 귀에 담던 날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의 유언이 없다는 사실은 통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엄마가 입 밖으로 꺼낸 마지막 말이 ‘고마워’ 였다는 것은 내게도 고마운 일일까, 마음 아픈 일일까. 엄마의 마지막 날들은 여전히 떠올리기 미어지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어떻게든 물어볼걸 아쉬운 질문들이 여전히 많다.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들이 궁금해질 때면 마음으로 청한다. 엄마, 오늘 밤에 꿈에 나와 들려주세요.


마스다미리의 아버지의 마지막을 코앞에서 읽어 내려가면서 내 엄마의 마지막을 떠올리고, 그 시간 마스다미리의 감정을 실감한다. 비슷한 시간에 머무른 내 마음을, 행동들을 떠올린다.

또 내 아빠를 떠올린다. 아빠에게는 종종 이유 모를 미안함이 피어오른다. 아빠를 떠올리면 왜 자꾸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지.


‘에세이를 한 편 쓰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 세계에서 쓰는 마지막 에세이가 될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에세이를 쓸지 알고 싶었다.’

71p. 아름다운 저녁놀


‘슬픔에는 강약이 있었다. 마치 피아노 리듬처럼 내 속에서 커졌다가 작아졌다. 커졌을 때에는 운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파도도 사라질 거라는 예감과 함께 슬퍼하고 있다.’

‘아버지가 죽고 반년이 지나니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앞으로도 해마다 조금씩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다.’

벚꽃과 켄터키.

131page. 벚꽃 필 무렵


달력의 숫자가 바람에 날려가듯이 겨울도 봄도 여름도 지나가고, 다시 가을이 돌아왔다. 가게 앞에는 호박 장식물. 핼러윈 계절이다.

마음 속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비유를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내 마음속에도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그것은 그리 크지 않은 나 혼자 쑥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다. 들여다보면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깊이도 알 수 없다.

한동안은 그 구멍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슬펐다. 그것은 추억의 구멍이었다. 구멍 주위에 침입방지 철책이 있어서 안으로는 도저히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얼마간 서 있다가 침입방지책을 넘어서 구멍 속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런 일도 있었지, 저런 일도 있었지. 한 칸 한 칸 내려가면서 그리워하고, 후회한다. 그리움과 후회를 반복하며 조금씩 깊이 내려가면 한동안 구멍 속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때의 아버지는 역시 용서할 수 없어!” 화도 낸다.

화난 얼굴조차 그리워질 때가 올까?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건 부아가 치미니, 그것만은 그리워하지 않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156p. 핼러윈의 밤. 종결


지난 봄은 꽤 잔인했다.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봄은 조금 괜찮겠지, 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종잡을 수 없어 어렵기만 하던 내 감정의 흐름들을 타인의 글에서 만나며 자꾸 흠칫한다. 그 모든 것들이 필요한 과정이었구나. 어쩌면 누구나에게 자연스러운 감정들이구나. 조금씩 알게 된다. 타인의 삶에 비춰 내 삶을 본다. 마음을 나누고 위로도 받는다.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래 이게 우리가 책을 찾는 이유 중 하나였다. 

사실 가장 절절히 붙잡게 되던 부분은 옮기지 않았다. 13장. '교토 가정식, 오반자이.' 이것이 아마 이 책을 다시 찾을 이유가 될 것이다.


한참 읽다 비로소 제목을 다시 보았다.

<영원한 외출>

마스다미리. 2018


#마스다미리 #영원한외출 #일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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