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 고성 - 2106 전주

함께 하는 마음

by 수빈노

고성: 웃고 있는 사진에서 짠 냄새가 난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엄마 없는 딸이 되고 아내 잃은 남편이 되었다. 버티는 마음과 받아들이는 마음은 일상에서 완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넷의 발이 자주 닿았던 곳으로 떠났다. 모든 장소에 엄마 모습이 겹쳐지고, 모든 장면에 빈자리가 그려졌다. 엄마가 좋아하던 낙산사 돌계단이, 엄마가 예쁘게 웃던 리조트 뒤 꽃밭이, 엄마가 차에서 내릴 수 없었던 바다가. 그곳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것을 보며 아직은 찬 공기를 쐬었다. 아는 맛에서 그리움이 모르는 맛에서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엄마가 좋아했는데’ 거나 ‘엄마가 좋아했겠다’로 끝나는 모든 말들.

떠났고 떠나지 못한 존재, 비었지만 사라지지 못한 자리가 정처 없이 헤매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세 사람의 마음이 유리 파편처럼 조각조각 사무치던 시간이었다. 매 순간 무너지는 것들을 부여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직은 초짜 사별가족이었던 우리 세 명. 넓은 방 두고 한 침대에 옹기종기 낮잠을 자고, 일렬로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나았을까. 셋은 오히려 공백을 확인하는 가장 명확한 방법이 되었다.


밤바다에 서서 불꽃놀이를 했다. 멀리멀리 날아가다 이내 사라지는 꽃들을 멍하니 지켜봤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모래 위에 벌렁 누웠다. 서로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함께 보듬고 같이 이겨내고 싶은 의지가, 너무 든든하고 너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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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조금씩 좋아지자 그냥 놓아두자 우리


예쁜 색이 번져간 하늘은 엄마가 물감 놀이를 하고 남은 흔적이고 맑은 날은 엄마 운동회 날이다. 구름은 엄마 차가 되거나 친구나 장난감이 되거나 하고, 그렇게 우리는 한 없이 유치하고 귀여워진다. 오늘은 무자비한 비가 낸종일 내리는데 도대체 엄마는 뭘 하고 노는 거지?


남은 셋이 모여있을 때야말로 영원히 사라지지 못할 존재를 절실하게 실감했다. 지워지지 못한 ‘넷’의 감각은 영 덮어 쓰일 수 없었다. 차라리 우리는 그냥 넷이기로, 그대로 엄마와 함께이기를 택했다. 이리저리 시선이 닿는 곳에 사진을 옮겨 다니는 마음. 멋진 풍경 앞에 사진 속 엄마의 시선을 두어 주는 마음. 사진에 말을 거는 마음. 사진 앞에 밥상을 차리는 마음. 간식을, 용돈을, 함께 마실 차를 놓는 마음. 산책할 때 주머니에 액자를 담고, 잘 때 베개 옆까지 데리고 가는, 어떤 쓸쓸한 밤에는 손에 꼭 쥐고 자는 마음. 옷도 짐도 태우고 비워야 한다는데, 글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이렇게 두고 싶어. 어떤 마음도 정리하고 싶지 않다.


시절을 같이 겪은 우리는 함께 견디는 시간의 의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잘 이겨내 보겠다며 이를 악문 의지는 지금 보면 여지없이 진한 짠내가 나지만, 그땐 또 그래야만 했던 날들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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