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부터 다시 봄까지
2108 강릉: 어쩌다 보니 다시
‘천천히, 천천히’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소진된 것들을 회복하고 다시 시작할 마음을 갖기까지 충분히 쉬도록 했다. 어쩌다 보니 다시 강릉. 이번에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몰아 먹던 배달음식 대신 끼니마다 고민 끝에 선정된 맛집 메뉴들이 있었다. 깔끔한 호텔방 대신 바닷물을 먹은 빨래가 사방에 널린 펜션 방에서 번잡한 밤을 보냈다. 튜브도 불어주고 불도 피워주고 운전도 해주고 무엇이고 다 해주는 친구들이 옆에 있었다. 이상하게 숙취가 없는 여행이었다.
2110 양양 우중캠
2111 대관령 딸기코캠
2201 태안 :모래섬과 떡국
에어비앤비로 찾았던 태안에서는 무슨 진짜 핀란드에서 툭 날아온 것 같은 통나무집을 만났다. 바다 앞 절벽에 외딴 별채가 두 채. 어쩌다 호스트 아주머니와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바비큐 불을 붙여주시려던 게 함께 등심을 나눠 먹다가 조개를 굽다가 전복이 나오고 와인이 나오고 자꾸자꾸 뭔가가 추가되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떠나는 아침 일찍부터 유난스레 부르시더니 식탁 위에 차려진 오색 떡만둣국. 아, 설날이었지.
벽난로와 클래식 라디오. 창밖에는 절벽 아래 파도. 뜨거운 생강차.
마음이 몽글몽글.
2203 파주 :별 일
드라마 <서른아홉> 끝. 1화부터 힘들어 그만 두려다 끝까지 보길 잘했다.
아프고 아름다운 그 뻔한 일들이 그냥 위안이 되었다.
모두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벌써 웃어도 괜찮은지 아직 힘들어도 괜찮은지
누가 정하는 것일지 모를 그 시간의 기준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내 마음을 거기에 맞춰 넣어야 될지 몰라 어려운 때가 있었다.
어쩌면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지.
이제 평범하게 많이 웃는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단숨에 울어버리지만
‘슬픔’이나 ‘행복’ 같은 어떤 단어로 정리되지 않는 그 마음들이 언제까지는 이래도 괜찮다 괜찮지 않다 시간의 벽 안에 갇혀버리지 않길 바란다. 만나게 될 감정 모두를 언제든 온전히 만나고 안아줘야지
그저, 내가 그 파도를 기록 삼아
우리 모두의 삶 복잡다단한 레이어를 잘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2206 광명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는 믿음
오랜만에 광명을 찾았다. 목발을 들었다가 그냥 살살 걷기로 하고 내려놓았다. 모두가 부담스럽겠지? 이제는 좀 멀어졌다 해도 못 갈 거리는 아닌데 막상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잘 가지 않게 되는 내 고향 광명. 보통 축하할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반대의 일이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친구의 부모님을 보내 드리는 일. 나는 이제는 내가 조금은 알 수도 있을 너의 마음을 상상하며 너를 마주 본다. 너는 '네가 그때 이랬겠구나’ 만나는 장면마다 나를 떠올리며 내내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내주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더 큰 마음을 받는 것으로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상상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니 참 근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30년 정도를 광명의 이곳저곳에서 지냈으니 대부분의 앵글에 시절이 묻어있다. 여전히 그곳에 가면 오랜 친구가 있고 친구의 친정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알 수 없는 안정감을 준다. 많은 시절을 지났고 평온하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따뜻하고 명랑한 날들이었다. 내 고향 광명.